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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여행을 떠나자! -강우규 의사편-
안녕하세요! 포스팅에 올린대로 '이름 없는 역사' 책으로 돌아온 고지윤 기자입니다!!
제가 역사에 관심이 많은데요...특히 근대사에요. 그런데 아이들 용 책에는 다 알려진 것들만 써있는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어른용으로 산 책이 이 '이름 없는 역사'라는 책 입니다! 하지만 이 책이 이해하기 힘들 것 같은 내용들이 많더라고요...그래서!!!!!!!! 제가 이 책을 이해하고나서, 이 내용을 이 어과동 기사에 써 볼 것 입니다! 매일 저녁에 올라오니 봐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포스팅을 못 보신 분들이 있으실 것 같아서 다시 안내드려요:D
오늘은 그 책 중에서도 강우규 의사님에 대해서 쓸 것 인데요. 여기서 의사(義士)란 옮을 의(義), 선비 사(士)로 국가를 위해서라면 몸을 바쳐 일하려는(목숨까지 바칠 수 있는) 뜻을 지닌 사람을 뜻하는 것입니다.
위 사진을 보면 어딘가 익숙한 동상이 있지 않나요? 바로 서울역 광장에, (옛 서울역 석조 건물) 지금의 서울역사박물관 앞쪽에 자리하고있는 이 동상은 바로 강우규 의사께서 사이토 총독을 암살시도한 곳에 세워진 기념 동상입니다.
사이토 총독은 일본의 군인으로 3.1운동 직후 제3대 조선 총독으로 취임 한 경력이 있습니다. 위 : 사이토 총독의 사진
출처 : WIKIMEDIA COMMONS
강우규 의사는 (위 사진)사이토 총독에게 폭탄을 던지다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위 사진 : 강우규 의사
출처 : news.naver.com
강우규 의사 (姜宇奎 義士) 는 노인동맹단의 일원이였습니다. 노인동맹단은 1919년 3월 26일 김치보 라는 분의 집에서 만들어졌습니다. 노인동맹단은 46세 이상이 되어야 가입할 수 있었고, 기민한 투쟁은 할 수 없지만, 독립운동에 많은 영향을 주셨습니다.
강우규 의사께서 사이코 총독에게 폭탄을 던질 것을 결심한 데에는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사이토가 제 3대 조선총독으로 임명된 뒤, 사이토 총독은 친일이 아니면 모두 살아남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그러곤, 친일들은 일본인과 똑같이 대우해주고, 관직이나 문화혜택을 주었는데, 이것을 다른 말로 바꾸면 말 잘 듣는 조선인들을 똑같이 대우해 친일로 만드려는 계획이였습니다. 이로인해 사람들은 '피 흘리고 싸워봤자 총칼에 위협받고 감옥가서 고생하는데, 친일만 되면 나도 일반 국민처럼 살 수 있겠다!'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강우규를 비롯한 노인동맹단은 사이토 총독을 원수로 여길 수 밖에 없었고, 폭살(폭탄을 터뜨려 살해하는 것)을 결심하게 된 것입니다.
강우규 의사는 사이토 총독이 탄 마차에 폭탄을 던졌습니다. 폭탄은 터졌고 아수라장이 되었습니다. 몇몇의 군인들과 사이토 총독 이외의 주요 인물들이 부상을 입고, 죽었습니다. 강우규 의사는 유유히 그 장소를 빠져 나왔고, 보름(약 15일)동안 숨어지내며 다음 계획을 세우고 있었는데..........
그러던 어느날! (9월17일) 악명 높다는 친일 형사 김태석에게 체포되어, 감옥으로 끌려가 심한 고문을 받았습니다.
결국 우리나라 사람이 친일파가 되어, 지켜주기는 커녕, 잡아가 고문을 준 것입니다.
재판에서_
친일 형사 김태석은 자신이 체포한 것이 아닌 강우규 의사 혼자 자백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악독한! 친일 행각을 감추기 위해서였죠. 김태석의 뻔뻔함과 악랄함은 밑의 글, 반민자대공판기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반민자대공판기_
민족반역자 공판 제 2일인 29일! 역시 첫나루 못지않게 방청객이 쇄도하였다. 이날의 방청객은 전날 방청객보다 좀 냉정한 표정들이다. 이날의 주인공은 고문으로 유명한 김태석과 자칭 애국자로 유명한 이종형이다. 특히 김태석은 경성역전에서 왜정 총독 재등실을 살해코자(살해하고자) 투탄한(폭탄을 던진) 우리의 가장 애국투사 강우규 선생을 체포하여 사형케 한 악질적인 반민자임에 더욱 울분과 흥미를 자아내는 심판이였다.
(중략)
재판장: 서울역에서 폭탄사건이 발생할 때 피고는 참견하였다지?
피 고: 네, 하였습니다.
재판장: 그때 강우규 선생이 투탄한 사실을 좀 이야기 하시오.
피 고: 네, 역에서 사이토가 신문기자에게 사진 찍힐 때 폭탄을 던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재판장: 강우규 선생을 피고가 체포하였다지?
피 고: 천만에 말씀이오! 강 선생은 9월 12일 종로서에 자수하여 왔습니다.
재판장: 그때 피고는 강 선생을 수색하였다고 하는데?
피 고: 피고는 그 사건에 전혀 관계치 않습니다. 피고는 그때 당시 병이 나서 일주일 만에 변소에 겨우 갈 정도였습니다.
재판장: 피고가 종로서에서 강 선생을 수색하였다고 하는데?
피 고: 아닙니다.
(중략)
곽상훈 검찰관은 분연히 일어서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피고 김태석의 이제까지의 진술을 본다면 조선 사람 중 에서 가장 애국자이며 독립운동자가 아닐 수 없게 되었으니, 이 사실은 피고 김태석의 정신감정을 하여 볼 필요성이 있다. 강우규 선생사건만 하더라도 9월 2일 폭탄을 서울역에서 던지고 9월 17일 잡히었는데, 강선생이 김태석에게 잡힌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리고 또한 강 선생으로 말하면 민족을 위하여 분투하고 몸을 바치신 어른인데 자수하였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사형선고 후_
아들은 자신의 아버지가 죽는 것을 결코 원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강우규는 아들에게 울지 못하게 하고, 육체의 애비가 죽는 것이지, 영혼의 애비는 영원히 살아있을 것이라며 다독였습니다.
그러곤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습니다...
읽고 난 후 느낌_
강우규 의사님을 저는 들어보지도 못했습니다. 하지만 강우규 의사가 이렇게 훌륭한 인물이라니, 정말 슬프고 존경하게 됩니다. 이렇게 훌륭한 일들을 했지만 밝혀지지 않은 훌륭한 분들이 몇 백 명, 아니 수십 만 명 일텐데 밝혀지지 않은 것이 너무 가슴이 아픕니다.
너무 지루하고 긴 내용이였죠?ㅎㅎ 이렇게 길게까지 써 질지 몰랐네요. 다음, 2편은 또 누굴지, 저도 기대가 갑니다.
지금까지 역사여행 -강우규 의사-편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상 고지윤 기자였습니다!
글쓰기 평가어린이과학동아 기자2020.06.23
맞아요. 알려지지 않은 역사적 위인들이 정말 많은 것 같아요. 이렇게 알려지지 않은 분들을 책을 통해 알게 되고, 친구들에게 소개해준다니 고맙고 좋은 생각이네요. 지윤 기자 덕분에 강우규 의사가 어떤 분인지 알 수 있었어요. 다만, 이번 글은 책의 내용을 발췌해 내용을 정리하는 데에 집중을 많이 한 것 같아요. 2편에서는 지윤 기자의 문장으로 좀 더 어떤 분인지 소개해 보면 더 좋을 것 같네요. 2편도 기대할게요. ^^
마지막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