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가장 마음에 드는 신라시대 유물과 유적 불국사,석굴암,귀고리에 대해

2015.06.14

안녕하세요.

구지회기자입니다.

이번 미션인 '신라시대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3가지 유적과 유물'에 대해 알아보려고 합니다.

저는 아직 경주에 가본적은 없지만 책과 박물관에서 신라의 유적과 유물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그 가운데서 마음에 드는것이 많아 3가지를 고르는것은 정말 어려웠습니다.

결국 한참을 고민한 후에  불국사와 석굴암,그리고 금귀고리에 대해 알아보기로 했습니다.


1.불국사


여러분은 경주에 있고 신라시대를 대표하는 것을 묻는다면 우선 무엇이 떠오르나요?

대부분 불국사가 아닐까싶습니다. 

불국사는 아시다시피 유네스코에서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이며

우리에게 잘 알려진  다보탑과 석가탑을 포함한 많은 보물들을 갖고 있습니다.

불국사의 창건에 대한 이야기는 여러설이 있으나 종합해보면 대웅전과 무설전을 갖춘 사찰에서 비롯하여 김대성에 의해 경덕왕 10년(751년)에  대규모로 지어졌다고 합니다.

김대성에 대한 이야기도 재미있는데 김대성은 머리가 크고 편편하여 큰 성같아 대성이라 이름을 지었습니다.

 어머니와 함께 살던 대성이는 무척 가난했지만 전재산인 땅을 부처님께 드렸고  얼마뒤 죽었습니다. 그런데 대성이 죽던 시간에 어느 부잣집 하늘에서 대성이란 아이를 맡기노라라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 후 그 부잣집에서 아이를 낳았는데  손에 대성이라는 쇠붙이를 들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대성이는 다시 태어났다고 생각하고 전세의 어머니를 모셔와 같이 살며 불교를 열심히 믿었습니다.

그리고 현세의 부모를 위해서 불국사를 만들었고 전세의 부모를 위해서 석굴암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이 절은 751년에 공사를 시작하여 그가 죽은뒤 국가에서 완성시켰습니다.


또 한가지 불국사에 관한 이야기로는 우리나라 1만원 지폐에  불국사와 석굴암이 나올뻔 했다는 것입니다.

한국은행은 1972년 앞면에 석굴암 뒷면에 불국사를 넣어 만원권을 발행하기로 결정했지만 종교계의 거센 반발로 발행이 취소되었습니다.


2 .석굴암


토함산 산정 동쪽에 있는 사찰로서 대한불교조계종 11교구 본사인 불국사의 부속 암자입니다.

창건 당시의 이름은 석불사였습니다.


앞서 말했듯이 751년에 김대성에 의하여 창건되었습니다.

석불을 조각하려고 큰 돌 한 개를 다듬어 감개(龕蓋 : 감실을 덮은 천장돌)를 만드는데 돌이 문득 세 조각으로 갈라져 분노하다가 그 자리에서 잠들었는데, 밤중에 천신이 내려와 제 모습대로 만들어 놓고 돌아갔으므로 일어나 남쪽 고개에 급히 올라가 향나무를 태워 천신을 공양하였다고 합니다.


또한 석굴암은 과학적으로 만들어진것으로 유명하지요.

석굴암은 사방에서 누르는 무거운 힘을 받쳐줄수 있도록 단단한 구조로 만들어야 하므로 아치형으로 지었습니다.

이런 아치형 구조는 쌓다가 무너지기가 쉬워서 매우 정교한 건축기술이 필요하다고 하네요.

또한 아치형 구조는 습기가 잘찬다고 합니다.

하지만 1200여년을 습기나 곰팡이가 생기지 않고  잘 보존된 이유는 바닥에 감로수라고 차가운 물을 흐르게 했기 때문입니다.

바닥의 차가운 물로 인해 석굴내부의 습기가 바닥쪽으로 모여들고 물방울로 변해서 땅속으로 스며든다고 합니다.

이는 지금의 에어컨과 비슷한데 그 옛날 어떻게 그런 과학적인 생각을 했을까요?

지금은 아쉽게도 일제시대에 부서진 석굴암을 복원하고자 했지만 오히려 그런 과학기술을 재현하기가 어려워 기계로 온습도를 조절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석굴암은 동지에 해가 떠오르는 방향을 향해 있다고 합니다. 각도가 오차가 거의 없을정도라고 하니 상당히 정확하게 만들었지요.

석굴암은 세계서 유일한 인공석굴이어요. 그만큼 만들기가 어렵다고 합니다.

대단히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이지요.



3.  귀고리


신라는 황금의 나라라고 할만큼 금장식품이 많았습니다.

예전 박물관에서 금관과 금띠,금귀고리를 보고 매우 감탄했습니다.

그런데

얼마전 신문을 보니 의성에서 신라시대의 화려한 금귀고리가 발견되었다고 하는것을 보았습니다.

우선 금으로 그렇게 아름다운 모양을 만들수 있다는것이 신기했고 사람들이 그렇게 무거운것을 어떻게 귀에 달고 다녔는지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귀고리에 대해서 알아보았습니다. 

귀고리의 구성은 귀에 닿는 접이와 밑으로 이어지는 수식의 두 부분으로 이루어집니다.

굵고 가는 것에 따라 태환과 세환으로 구별되고, 수식은 모양에 따라 평면형 ·입체형 ·혼형 등으로 구분됩니다.

  세환은 원시형에 속하는 것으로, 1.속이 빈 것과 2.통으로 된 것 2종류가 있으며, 각각 귓밥에 구멍을 뚫어 착용할수도 있으나  태환은 수식이 다양하고 테가 굵어서 귓밥을 뚫어 착용하기는 어려웠을 것으로 보여집니다.세환은 무게로 보면 태환보다 가볍습니다. 길이 5cm 내외에, 무게는 5∼15g 정도입니다. 태환보다 착용 가능성이 높지요.

그래서인지 신라의 고분에서 출토된 것을 기준으로 살펴보면 귀에 거는 태환보다는  귀를 뚫어 끼우는 세환이 많이 출토되었습니다.


아쉽게도 제가 무척 궁금했던 실제 귀고리의 착용법은 확실하게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다만 요즘 귀고리가 0.5∼4g인데 비해 태환의 경우 30g이 넘는 무게라 직접 착용하진 않았을거 같다고 추측되며 실이나 끈으로 연결해 귀고리를 귀나 모자 등에 걸었을 것 같다고 합니다.


현대의 장신구에는 금이 단단해지도록 순금에 구리등을 주로 섞지만 신라시대에는 순금에 은을 섞었다고 합니다. 귀에 직접 닿는 부분은 금함량을 높이고 장식부분은 떨어지지 않게 은을 더 많이 섞어 단단하게 만들었다고 하네요.


참고로 귀고리와 귀걸이의 차이점은 귀걸이는 귀에 거는 장식품이고 귀고리는 귀를 뚫어 하는 장식품이라고 합니다.

신라의 유물과 유적에 대한 조사를 하면서 경주에 직접 가고 싶어졌습니다.

이상으로 신라시대의 마음에 드는 유물과 유적 미션을 마치겠습니다.






[고자료]
 1. 「경주의 문화유산」, 경주박물관회, 이근직 엮음, 1998.
 2. 「한국민족문화대학과사전」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1




글쓰기 평가현수랑 기자2015.06.16

친절한 어투의 자세한 설명으로 재미있는 기사가 된 것 같아요. 많은 유적과 유물 중 불국사와 석굴암 그리고 금귀고리를 선정한 이유를 좀 더 소개한다면 더 흥미로운 기사가 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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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와! 많은 걸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