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문화재지킴이기자단 문화유산 진로체험 두 탑 이야기

2015.11.12



<청소년문화재지킴이기자단 문화유산 진로체험>



 



비교하면서 배우는 백제역사지구 두 탑 이야기



 



항상 절에 가보면 우뚝
서있는 탑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 이번 진로체험에서는 백제의 유적지인 부여의 정림사지와 익산의 왕궁리를
갔었습니다
. 그런데 두 유적에 있는 탑들은 정말 닮았습니다. 하지만
미세한 차이는 속일 수 없었습니다
.



 



첫 번째. 글귀가 써져 있는가?



정림사지의 5층석탑에는 당나라 장수 소정방이 백제정복 기념탑이라고 써서 평제탑이라고 불리는 수모를 겪었습니다. 남의 나라 문화재에
글귀를 쓰는 부끄러운 행위를 하다니
한반도의 땅을 신라로부터 공짜로 얻을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던
욕심 많은 당나라는 우리의 멋진 문화재를 훼손하는 행위를 저질렀습니다
.



반면 왕궁리 5층석탑에는 글귀가 없었습니다.





 



두 번째. 5층 석탑인가?



이름을 보면 5층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조사해본 결과 삼국시대에는
대부분 홀수 탑이었지만 고려로 넘어가면서 짝수 탑도 생겨났습니다
.



 



세 번째. 만든 시기와 왕이 정확히 밝혀졌는가?



왕궁리 석탑은 고려시대
때 백제와 신라의 문물이 합해져 만든 퓨전 탑입니다
. 사리장엄구가 발견된 모습이 백제시대 석탑형식과
유사하였고 신라의 문물도 들어갔기 때문입니다
. 당시 불교사찰을 지을 때 다른 나라 장인이 와서 도와주는
일이 많이 있었습니다
. 예를 들어 황룡사를 지을 때 백제의 장인 아비지가 가서 직접 황룡사 9층 목탑을 만들었답니다.



정림사지 석탑은 백제시대
때 의자왕이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 그 이유는 소정방이 글을 썼다고 하면 백제를 무너뜨리기 전에 만들었다는
것인데 무왕은 만들었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 그래서 의자왕 때 만들어진 것으로 생각됩니다.



 



네 번째. 장소가 어떤 목적으로 사용되었는가?



왕궁리 유적은 무왕을 기리기
위하여 왕궁에서 나중에 사찰로 바뀌었습니다
. 정림사지는 백제부터 고려 때 까지도 번창하였던 사찰이었습니다.



 



여섯 번째. 부처님을 위한 절인가?



정림사지는 부처를 모시는
절이었으나 왕궁리는 위와 같이 무왕을 기리는 절이었습니다
. 정림사지에 있는 돌부처는 고려시대 때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




 



일곱 번째.  11금당제
(탑이 한 개 금당이 한 개 인 배치를 말함)인가?



정림사지와 왕궁리 모두
멋진 가람
(사찰의 배치도를 말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일렬로 깔끔하게 정리된 절의 모습은 승려가 되는 길의 한 단계 한 단계를 표현한 듯 보입니다.



 




이렇게 정림사지와 왕궁리에
있는
5층 석탑에 대해 알아보았는데 두 탑 모두 다르다고 해도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입니다. 이 두 탑은 세계문화유산에 등재 된 백제유적지구를 빛내주면 좋을 것 같습니다.



지금은 혼자서 외로이 왕궁리를
지키고 있는
5층석탑은 언젠가 옆에 짝꿍이 되어줄 진정한 왕궁리가 빨리 돌아오길 바라겠습니다.  



 


왕궁리 5층석탑


정림사지 5층석탑




글쓰기 평가현수랑 기자2015.11.16

두 석탑의 차이를 통해 석탑에 대한 정보를 알려 주는 재미있는 기사네요. 마지막에 차이점을 표 같은 것으로 한 눈에 볼 수 있게 정리하면 민주 친구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한번더 강조하고, 사람들 기억에도 오래 남을 것 같아요. 민주 친구는 한 해 동안 정말 열심히 활동한 것 같아요. 먼저 박수를 짝짝짝! 청소년문화재지킴이 기자단으로 활동한 1년을 정리하는 기사를 써 보는 것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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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3
문화재들이 너무 아름다워요~
백제는 참아름답네요~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남의 문화재에 정질을 하다니..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