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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권 강화에 힘 쓴 위덕왕(525~598) 능산리 사찰을 만들다
왕권 강화에 힘 쓴 위덕왕(525~598)
지난 10월, 세계문화 유산에 등재된 백제 역사 유적 지구를 다녀왔습니다. 다녀와서 위덕왕에 대한 글을 읽고 정리해보았습니다.
위덕왕은 성왕의 아들로 나라를 강해지려고 만드는 임금이었다. 위덕왕의 이름은 창이고 시호는 위덕이다. ‘위덕왕이 553년 10월에 고구려와 싸울 때 고구려 장수와 싸웠다. 위덕왕이 목을 베어 군사들에게 보여주니 자신감이 생겨서 고구려 군을 쫓아버렸다’라고 <일본세기>에 써져 있다. 551년에는 신라와 같이 협동하여 고구려에게 뺏겼던 한강의 하류도 되찾았다. 그 때도 창왕자도 참여하였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지만 알 수 있는 것은 기록뿐이다.
그런데, 먼저 고구려와 밀약을 지킨 신라가 한강 하류를 차지해버리자 백제 사람들은 무척 화가 났었다. 그래서 창왕자가 나가서 싸웠다. 성왕도 나가서 싸우자 신라에서 성왕을 붙잡아 죽였고 창왕자도 포위되었다가 겨우겨우 빠져 나왔다. <삼국유사>에는 554년 9월 신라진성을 공격해 남녀 3만 9천명과 8천필의 말을 빼앗았다고 한다. 이 공격은 아버지의 유해를 찾아오기 위한 전쟁이었다. 또 위덕왕은 능산리 사찰을 건립하였다고 하는데, 그것은 성왕의 친척과 자식들이 효를 실천하기 위해서 사찰을 건설하였다. 여기서 금동대향로가 출토되었는데, 상왕의 제사를 지낼 때, 썼던 것으로 추정한다.
위덕왕은 능산리 사찰을 만들었으며 그 사찰에 있는 목탑이 있다. 목탑 아래에서 금동대향로가 발견되었다고 한다. 대향로의 전체 높이는 62.5cm이고 뚜껑, 머리, 다리 부분을 만들어서 하나로 붙였다. 능산리 고분에 주차장을 만들려고 땅을 파고 있었는데 대향로와 같이 기와 조각과 토기 조각이 함께 발굴되었다. 섬유 조각과 함께 발굴이 되었는데, 대향로를 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대향로가 잘 보존된 이유는 공기가 그 때에 진공상태였기 때문이다. 나당 연합군이 사비성을 함락했기 때문에 660년에 백제는 멸망하였다. 소정방이 탑에 쓴 글은 ‘대당평백제국비명’이 탑에 새겨져있다. 이 뜻은 당나라가 백제를 멸망시켰다는 것을 새겨놓은 것이다.
글쓰기 평가현수랑 기자2015.12.15
<나라를 강해지려고 만드는 임금이었다.> -> 나라를 강하게 만드려는 임금이었다.
또 위덕왕과 신라, 고구려의 관계에 대한 설명이 먼저 있으면 좀 더 이해하기 쉬운 기사가 될 것 같아요. 위덕왕이 능산리 사찰을 만든 이유도 필요할 것 같아요.
친구에게 위덕왕에 대해 설명한다고 생각하고 쓰면 좀 더 쉽고 재미있는 기사를 쓸 수 있을 거예요. ^^
글쓰기 평가현수랑 기자2015.11.23
기사에 중간에 끊어진 것 같아요. 사진도 보이지 않구요. 일단 보류해 둘테니 수정해서 다시 올려 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