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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SR-I부터 누리호까지 28년의 세월의 역사적 장면
안녕하세요?
임도윤기자입니다.
오늘은 1993년 KSR-I에서 2021년 누리호까지 28년의 역사적인 장면 10개를 보여드리려고 합니다.
대한민국 우주발사체의 개발에 한 획을 그었던 순간. 2021년 10월 21일 오후 5시 4분이였죠.
이토록 우리 로켓은 30년 가까이 한국항공우주연구원 KSRI와 성장하고 진화해 왔습니다.
우리 손으로 개발한 로켓에 우리 위성을 실어 발사하겠다는 꿈.
이것은 계단과 같았습니다. 오늘은 어제보다 한 발 더 나아갈 뿐, 지름길은 없었습니다.
지금 시작하겠습니다.
1. KSR 계획
1993년 6월 4일, 안흥 발사장에서 KSR-I이 발사되었습니다.
한국항공우주연구소(지금의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설립 4년만에 우리 손으로 만든 과학로켓이 발사되었습니다.
이 1단 고체 로켓(KSR-I)가 발사후 4년 뒤, 2단 중형 로켓 (KSR-II)가 탄생합니다.
KSR-I보다 추력(프로펠러의 회전 또는 가스분사의 반동에 의하여 생기는 추진력)은 2배이고, 최고속도는 4배였습니다.
그리고 5년만에 최초의 액체엔진 로켓인KSR-III로 진화합니다.
이 KSR 계획으로 대한민국은 우주발사체 개발을 위한 기반을 확보 할 수 있었습니다.
(KSR-II발사준비_출처:https://blog.naver.com/jayyoo2002/221420922970)
"한국 우주개발의 개철자라는 사명감으로 KSR-I연구에 몰두했다"KSR-I 연구진이 한 말입니다.
2. <제1차 우주개발진흥기본계획> 수립
씨앗을 뿌리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요?
바로 비옥한 땅이 필요합니다.
똑같이 우주발사체 개발에도 토대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만의 우주개발 플랜을 처음 세우기 시작했던 시기.
KSR-I가 발사된지 3년만에 <우주배발중장기기본개획>이 확정되고, KSR-III이후 3년 뒤에는 <우주개발진흥법>이 제정됩니다.
비로거 2007년 6월에는 <제1차 우주개발진흥기본계획>이 수립되며 흐린 목표는 밝아졌습니다.
먹구름이 낀 뒤 맑은 하늘이 온 것이죠.
이후 우리는 우주개발 원천기술을 확보하고 '우리 손으로 개발한 로켓에 우리 위성을 실어 발사하겠다'고 이 안에 담깁니다.
비록 미국과같은 선직국보다 늦었지만 핵심적인 기술을 직접 확보하겠다는 열정과 의지만큼은 더욱 강력해졌습니다. (한국항공우주연구소 현판식_출처:https://www.youtube.com/watch?v=iIc0tQ_eUAk)
3. 나로우주센터 건립
우주로 가는 문 나로우주센터의 탄생입니다.
우주센터는 그저 로켓을 쏘는 발사대만을 의지하지 않습니다.
독자적인 우주개발을 수행키기 위한 전초기지입니다.
2001년 건립 사헙을 시작하고 8년 뒤, 준공이 되어 세계 13번째 우주센터 보유국이 됩니다.
이곳에서 발사운용 기술을 완벽히 확보하고 우리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 발사대가 2020년 추가로 건설되어 나로호 이후 새로운 출항 준비를 마칩니다.
4. 나로호 발사
(나로호 1차_출처:https://blog.naver.com/kanon929/108436611)
2013년 1월 30일 나로호 3차로 발사가 성공했습니다.
이 날은 우리 땅에서 최초로 우주발사체를 쏘아 올린 날이였죠.
온 국민이 고흥으로 가 나로호 발사를 보던 날입니다. 모두가 염원하던 끝에, 발사가 성공하던 날 입니다.
나로호는 기술 습득을 위해 1단을 러시아 엔진을 사용해 2단 한국 고체 킥모터를 합쳐 나로호를 만들었습니다.
이 나로호는 1차때 폭발, 2차때 페어링 분리 실패로 2번의 실패와 4번의 발사연기 끝에 성공했습니다.
"3차가 실패하면 나로호는 끝내 실피로 기록될 수밖에 없다"나로호 개발진이 한 말입니다.
나로호는 우리 기술 우주발사체를 만들기위한 토대가 되어주었습니다.
설계부터 제작, 시험 등 발사에 필요한 기술과 경험을 습득 할 수 있었습니다.
5. 누리호 개발 착수
여러분은 누리호가 언제부터 계획되셨는지 알고 계시나요?
바로 11년 전입니다.
이 누리호 개발사업이 걸음마를 뗀 순간입니다.
앞선 나로호 개발 경험은 누리호 개발으로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쉽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결론은 '도전할 가치가 충분하다'였습니다.
우리 기술로 1.5톤급 실용위성을 700km의 지구저궤도에 발사 할 수 있는 3단 우주발사체를 완성해야 했죠.
이후 나로우주센터는 한국형발사체, 누리호를 위한 대규모 시험장으로 바뀌어 나갔습니다.
6. 추진제 탱크 제작 성공
추진체 탱크. 얼마나 클 것 같으시나요?
많이 크다고요?
네. 맞습니다.
추진제 탱크는 로켓 구조물의 80%를 차지할 정도로 큽니다.
엄청난 추진재의 무개를 견뎌야 하지만, 탱크의 두께는 2에서 3mm에 불과합니다.
이런 얇고 가벼운 소재를 용접하여 탱크로 사용하는 곳은 지상에 없습니다.
그래서 개발진은 용접-불량-공장 개선, 다시 용접하는 과정을 셀수 없이 반복해야 했죠.
이렇게 질기고 가벼운 추진제 탱크 제작을 끝낼때까지 전 과정을 수작업으로 진행했던 개발진은 그야말로 도공의 혼을 불어 넣어야 했습니다. (추진제 탱크_출처:https://blog.naver.com/koreaaerospace2030/222402392460)
7. 누리호 시험발사체
2018년 우주발사체의 심장, 액체엔진 개발 미션을 완수한 날입니다.
이 시험발사체로 중대형 액체로켓 엔진 보유국 7개의 나라 중 한 개의 나라로 번성하게 됩니다.
이렇게 누리호 시험발사체 비행으로 우리 엔진의 성능을 확인했습니다.
(누리호 시험발사체_출처:https://news.naver.com/main/read.naver?oid=468&aid=0000451762)
이 시험발사체는 한국형발사체를 위한 여정의 초록불이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누리호의 성공 가능성을 확인하여 자립 우주발사체 개발의 첫 번째 고동을 울렸습니다.
마지막 장면. 누리호 기립&이송
총 조립동에서 출발해 1분에 2m가량 발사대로 이송된 후, 엄빌리칼 타워 옆에 우뚝 선 누리호. (누리호 기립장면_출처:https://www.kari.re.kr/kor/kariimg/view.do?idx=1729&mno=sub05_01&img_gbn=PHO)
지난 10년간의 고투가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습니다.
모든 순간이 시험의 연속이였습니다.
모두 새로운 도전이였습니다.
누리호를 이룬 37만개 부품들은 수만시간동안 극한 조건의 우주환경 시험을 거쳐 한 몸으로 이 자리에 섰습니다.
"우리 손으로 만든 발사체를 우리가 만든 발사대에 세우고 싶던 우리의 꿈이 현실이 돼었습니다. 아직 갈 길이 멀지만 자부심을 느낍니다."누리호 개발진은 이처럼 말했습니다.
발사체의 심장인 엔진, 심장을 뛰게 할 추진제 탱크, 중대형 발사체의 새로운 도약대인 누리호 발사대까지. 이번 6월 발사대인증시험과 8월 발사 전 최종점검 WDR은 누리호가 달린 10년의 여정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누리호 기립과 이송이 마지막 결정적 장면입니다.
이상 임도윤기자였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