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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챌린지]우장춘 박사님에 대해 알아보자!
안녕하세요? 오늘은 우장춘 박사님에 대해 알아볼겁니다.
우장춘 박사님은 1898년 4월 8일 일본 도쿄에서 태어나셨어요.
우장춘 박사는 박사님의 아버지가 한국인, 어머니가 일본인 이라는 이유로 어렸을 때 차별을 많이 받았어요.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차별받고 놀림당했던 어린 우장춘 박사님에게 어머니는 항상 큰 힘이 되어 주셨어요.
열심히 공부한 박사님은 1916년 4월 동경제국대학 농학실과를 졸업하셨어요.
유전학의 원리를 이용해 기존 식물의 품종을 더 좋게 하거나, 새로운 품종을 만드는 육종학 연구에 매달리셨어요.
이렇게 연구에 매달린 끝에 논문 <종의 합성>은 유전학 역사에 한 획을 그은 것으로 유명합니다.
일본에서 당당한 한국인으로 연구를 게속하던 박사님은 조국의 연락을 받습니다.
그래서 한국으로 가게 됩니다.
1950년 3월 우장춘 박사님은 우리나라에 도착했습니다.
일본에 남은 우장춘 박사님의 가족을 위해 우리나라 국민들이 자금을 모았는데, 박사님은 그 자금으로 일본에서 육종에 대한 책 실험기구, 각종 종자를 사오셨어요.
우장춘 박사님이 가장 먼저 개발한 것은 배추와 무의 새로운 품종이에요.
크고 아삭하고 병충해에도 강한 새로운 품종이였죠.
우장춘 박사님은 강원도에서 씨감자가 모두 바이러스에 감염돼 농민들이 굶고 있을 때 씨감자를 개발하셨어요.
그리고 재주도에서는 감귤을, 주한미군에게는 수경재배를, 1958년에는 벼 연구를 하셨어요.
그런데 갑자기 박사님의 어머니가 돌아가셨어요.
하지만 박사님은 일본으로 가지 못했어요.
이 소식을 들은 제자들은 우리나라에 어머니의 빈소를 차렸어요.
당시 한국농업과학연구소에는 수도가 없어서 박사님은 조의금으로 우물을 파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기적같이 바위가 깨지면서 맑은 물이 쏟아져 나왔어요.
박사님은 그 우물의 이름을 자애로운 어머니의 기적같은 샘, ‘자유천’이라고 이름을 붙이셨어요.
우리나라 농업에 대한 박사님의 열정은 끝이 없었어요. 하지만 박사님은 벼 연구를 마치지 못했습니다.
우리 정부는 우장춘 박사님께 대한민국 문화포장을 수여했습니다.
3일 뒤인 1959년 8월 10일, 박사님은 눈을 감으셨습니다.
우리나라 농업을 한층 더 발전시켜 주신 우장춘 박사님께 감사한 마음을 가져야 겠어요.
지금까지 성소율 기자였습니다.
글쓰기 평가어린이과학동아 기자2023.07.28
우리나라 토양에 맞는 농작물 연구를 해주셨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가 다양한 맛 좋은 국내 농작물을 먹으며 지낼 수 있는 거겠죠? 우장춘 박사님하면 수박씨만 생각이 났었는데, 친구들의 글 덕분에 우장춘 박사님의 가족사와 여러 농작물 연구를 해주셨다는 걸 알 수 있었어요. 기사 잘 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