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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독립운동가, 강우규 의사
안녕하세요~ 강민호 기자에요~ 오늘은 독립운동가 강우규 의사에 대해서 써보려고 해요. 강우규라는 이름은 꽤 생소할 것 같은데요, 함께 알아볼까요?
(사진출처: 네이버 블로그)
☆개요
강우규(1855~1920) 의사는 젊은 시절에 한의사로 일했어요. 강제병합 이후 북간도로 이동해 독립운동을 벌였죠. 1915년경에는 요하현으로 옮겨 신흥동이라는 한인마을을 만들고, 광동학교를 설립하였어요. 3.1 운동이 일어나자 대한국민 노인동맹단에 가입해 활동했고 1919년 9월 2일, 강우규는 제3대 조선총독으로 온 사이토 마코토를 향해 폭탄을 던졌어요. 이 의거로 경찰 2명이 죽고 30여명 이상이 크게 다쳤지만 사이토는 살아남아 현장을 빠져나갔죠. 강우규는 결국 일제 경찰에 체포되어 사형을 언도받았고, 1920년 11월 29일에 사형당했어요.
(사진출처: 연합뉴스)
☆구체적 설명
자 찬구(燦九), 호 왈우(曰愚). 1855년 7월 14일 평안남도 덕천군 무릉면 제남리에서 태어났어요. 30세 때 함경남도 홍원으로 이사하여, 한의술로 환자를 치료하면서 그리스도교에 입교하여 장로가 되었고, 학교를 설립하여 청년들에게 신학문을 가르쳤죠. 1910년 국권피탈 후 만주로 건너가 지린성 라오허현에 정착하여 신흥촌을 건설하고 광동중학을 세워 교육사업에 진력하였어요. 조국에서 3·1운동이 일어나자 박은식·김치보 등과 상의하여 조국에 돌아가 거사할 것을 자원, 영국제 폭탄을 가지고 서울에 잠입하였죠. 제3대 총독으로 부임하는 사이토 마코토를 폭살하기로 결심하고, 1919년 9월 2일 남대문역(현재의 서울역)에서 사이토의 마차에 폭탄을 던졌으나 총독을 암살하지는 못했어요. 하지만 무라다 육군소장, 혼마치 경찰서장 등 핵심인물들이 중경상을 입었죠. 강우규는 뜻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일본군과 경찰들에게 공포심과 암살에 대한 두려움을 심어줬어요. 폭탄 투척 후 피신하던 중 일제 경찰에 복무한 김태석에게 체포되어 1920년 11월 29일 서대문형무소(구 서울구치소)에서 사형을 당하였죠.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되었어요.
많은 분들이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안중근 의사, 상하이 홍커우 공원에서 폭탄을 던진 윤봉길 의사, 또는 히로히토 일왕에게 폭탄을 던진 이봉창 등의 독립운동가들만 기억하시는데, 강우규 의사도 우리나라의 위대한 독립운동가에요. 강유규 의사, 우리가 기억해야할 위대한 독립운동가이에요.
강우규 의사께서 쓰신 절명유언시를 보여주며 오늘 기사를 마칠께요~ 감사해요~
절명유언시 왈우 강우규
단두대 위에 올라서니 (斷頭臺上)
오히려 봄바람이 감도는구나 (猶在春風)
몸은 있으나 나라가 없으니 (有身無國)
어찌 감회가 없으리오 (豈無感想)
글쓰기 평가어린이과학동아 기자2023.10.29
강우규 의사는 정말 생소한데요. 오늘 민호 친구의 글을 통해 알게 되었네요. 한의사이시면서 독립운동가였던 강우규 의사의 일생에 대해 정리해 주었습니다. 조금 아쉬운 점은, 사람에 대한 글을 쓸 때 태어난 것에서부터 사건을 나열하는 방법으로 쓰면 지루한 느낌이 들어요. 그 분의 어떤 점에 대해 주목해서 쓸 지 주제를 좀 더 정확하게 정하고 그 부분에 대한 내용을 채우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다음에 글을 쓸 때 참고하길 바랄게요. ^^
마지막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