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현대사가 살아 숨쉬는 그 곳, 정동에 가다 정동 스탬프 투어

2014.11.02

안녕하십니까? 박준한 기자입니다.

지난 11월1일 정동에서 스탬프 투어를 했습니다

 

정동은 태조 이성계의 두 번째 부인인 신덕왕후 강씨의 능 '정릉'이 있었던 곳입니다. 정릉은 태종 이방원에 의해 도성 밖으로 옮겨졌습니다.

 

간 곳은 중명전에서 출발하여 구 러시아공사관, 이화학당, 정동제일교회, 배재학당을 거쳐 다시 중명전으로 돌아오는 투어였습니다.

 

제일 먼저 간 곳은 구 러시아공사관입니다. 러시아공사관은 한국전쟁때 폭격을 받아 부셔졌지만 탑부분은 지금까지 파손되지 않고 있습니다. 또 러시아공사관은 '아관파천'으로 유명한 걸 잘 알고 계실겁니다.

여기서 잠깐!  아관파천은 1895년 10월 8일 일본에 의한 명성황후 시해사건이 있고 나자, 고종이 자신의 몸을 지키기 위해 러시아공사관으로 거쳐를 옮긴 것으로서, 결국 그 댓가로 러시아에게 압록강 주변의 삼림채벌권, 전국 각지의 광산 채굴권, 시베리아와 조선의 전신선 연결권을 주고 말았습니다.

 

 

한 나라의 왕이 자신의 집인 궁궐을 버리고 다른 나라의 공사관에 간 현장을 직접 가보니 부끄럽습니다. 하지만, 일 년 만에 다시 궁으로 돌아가 황제가 된 고종이 자랑스럽기도 하였습니다.

 

다음 간 곳은 이화학당입니다. 남자만 교육받던 조선에 최초의 여학당이 설립되었습니다. 1886년 메리 스크랜튼 선교사에 의해 설립되었고 고종황제께서 '배꽃처럼 희고 맑고 깨끗하라'는 뜻의 '이화'라는 이름을 하사했다고 합니다.

 

 

선교사 헨리 게르하트 아펜젤러에 의해 세워진 정동제일교회와 배재학당도 다녀왔습니다. 배재학당은 '유용한 인재를 기르고 배우는  집'이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정동을 한 바퀴 돌고 다시 돌아온 곳은 황실도서관으로 지어진 중명전입니다. 덕수궁 화재가 일어난 1904년 고종은 이곳으로 거쳐를 옮겼다고 합니다. 그 후 1905년 을사늑약이 이 곳 중명전에서 강제로 체결되었다고 합니다. 우리는 중명전 안으로 들어가 김진형 연구원님께 강의를 들었습니다.

 

 

강의를 듣고 난 후에 정동 스탬프 투어 도장을 찍어주셨습니다. 도장의 모양은 대한 제국의 상징인 오얏꽃 모양이었습니다. 오늘 다녀온  정동과 덕수궁 지도 도장을 빈칸에 찍어주시고, 대한제국의 옥새도 찍어 주셨습니다.  옥새가 스탬프가 아닌 진짜 도장이었다면 더 좋았을 것  같았습니다.

 

 

 

김진형 연구원님의 강의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말씀은  바로

 

" 올바른 역사의식을 갖자."입니다.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 역사를 잘못 아는 친구들이 있습니다. 올바른 역사의식을 갖기 위해서는 역사책을 많이 보고,  직접 유적지에도 많이 가보고,  why 또는 if 라는 가정을 갖고 역사에 대한 질문을 하는 것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이상 박준한 기자였습니다.

 

 

 

 

 

 

 

 

글쓰기 평가현수랑 기자2014.11.05

정동에서 무엇을 보고 느꼈는지 잘 알 수 있는 기사였습니다. 친구의 느낌을 좀 더 자세하게 썼다면 더 생생한 기사가 됐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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