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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본성 칼과 현] 삼국시대에 가야는 왜 빠졌을까?
우리나라의 역사는 기원전부터 긴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 '가야'라는 나라가 있었다는 것을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실 것입니다.
하지만 여러 기록을 찾아봐도 가야에 대한 기록은 거의 없습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가야가 있었음을 어떻게 아는 것일까요? 가야에 대하여 좀 더 알고 싶어서 현재 국립 중알 박물관에서 전시되고 있는 [가야본성 칼과 현] 가야 특별전에 다녀왔습니다.
[가야본성 칼과 현]이라는 제목으로 가야만의 이야기로 꾸며진 전시는 28년만이고 후에 일본에까지 전시 예정이라고 합니다. 박물관 선생님이 설명해 주시는 도슨트 시간이 맞아서 '가야'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선생님께서 말씀 해 주신 내용중에 '가야'에 대한 기록은 '삼국유사'에 처음 기록되어 있다고 합니다. 각 곳에서 가야의 유물이 출토 되어서 가야에 대한 연구는 아직도 진행중이라고 합니다. 가야와 같은 시대에 세워졌던 삼국과의 차이점이 있습니다. 가야는 어느 한 나라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연합국이라고 하셨습니다. 지도자가 혼자서 통치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 통치할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통치 방법이 가야 멸망의 원인일 수 있다는 얘기가 있어서 안타까웠습니다.
많은 학자들은 한강 유역을 차지한 고구려, 백제, 그리고 신라를 통틀어 삼국시대라고 부릅니다. 여러 가지 기록들을 찾아 봐도 가야에 대한 기록이 있는 것은 거의 없습니다. 그러나 여러 유물, 터 그리고 얼마 되지 않는 기록들을 찾아보게 되면 가야라는 여러 나라가 있었음을 확신 할 수 있습니다. 가야는 여러 나라를 하나의 나라로 부르는 말입니다. 이 중 몇 곳 가야의 진짜 이름을 알려드리겠습니다. 고령은 가락국(대가야), 창녕은 비사벌국(비화가야), 함안은 아라국(아라가야), 김해는 가락국(금관가야), 고성 고자국(소가야)등 입니다.
가야의 건국 신화에 대해 알려드리겠습니다. 먼저 가야의 전시관에 입장하면 벽면애 있는 구지가를 볼 수 있습니다.
구지가는 9명의 지배자가 자신들의 지도자를 원하며 구지가를 불렀다고 합니다. 이후에 수로왕 설화와 허황옥 이야기와도 연결이 됩니다. 이 곳을 지나고 나면 가야 전시장의 첫 전시물인 돌탑(파사석탑)이 눈에 들어옵니다. 그런데 이 돌탑은 본래 가야의 것이 아닙니다. 이 탑은 아유타국(인도)의 허황옥이 안전을 빌며 실고 온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 탑은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227호입니다. 그러나 많은 뱃사람들이 자신의 안전을 위해 조금씩 파편을 떼어가서 당시의 모습과 많이 달라졌다는 것이 몹시 아쉬웠습니다. 허황옥은 전해오는 가장 오래된 다문화 가족이 아닐까 합니다.
그래서 인지 가야는 주변 나라와 공존과 화합을 하면서 연합국을 유지 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니었을까요?
[가야본성 칼과 현]의 전시는 다른 역사 전시장과 전시 방법이 다릅니다.
역사 전시장은 시대순으로 되어 있는 경우가 많은데 연합국의 특징과 가야인들의 생각을 알 수 있게 4개의 주제(공존, 화합, 번영, 디아스포라)로 구성 되어 있었습니다. '공존' 전시실에 들어가면 토기가 높이 쌓여있는 탑 같은 전시대가 있습니다. 이는 여러 가야들의 토기굽는 스타일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비료를 할 수 있는 공간입니다. 또 토기 탑 안에 들어 갈 수 있습니다. 이 곳에서 는 여러 가야들의 토기의 모양이 조금씩 다름을 알 수 있습니다. 같은 나라여도 지역의 특징에 따라 토기의 모양이 달라 질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가야의 '화합' 관련 전시실에서는 가야의 생활을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이 곳은 가야 왕의 무덤으로 전시실의 벽면을 바닥으로 모두 펼치면 실제 무덤의 모습으로 펼치면 실제 크기가 된다고 합니다. 가운데가 왕이고 좌우에 순장된 신하들의 무덤입니다. 이 곳에는 갓난아기부터 어른까지 모두 묻혀있습니다. 왕 가까이 묻혀 있을 수록 계급이 높은 사람이라고 합니다. 순장된 사람들은 몹시 무서웠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현재 이런 제도가 없어져서 너무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무덤에 묻힌 왕의 왕관도 함께 있어서 알고 있는 삼국시대의 왕관과 비교해 볼 수 있었습니다.
길을 따라 가면 갑옷들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계속 가면 철갑으로 무장한 가야 무사가 있습니다.
가야만의 갑옷이 아니라 왜의 갑옷도 전시되어 있어서 가야와 다른 나라의 갑옷을 비교해 볼 수 있었습니다.
철을 다루는 기술이 뛰어났던 가야는 철판을 작게 만들어서 연결하였습니다. 말타고 싸우는 기마병이 대장인줄 알았는데 일반 병사가 상대편 진영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국보 제 275호의 기마 인물형 뿔잔(말 탄 무사모양 뿔잔)을 통해 가야의 실제 모습을 상상해 볼 수 있었습니다.
초등학생이 어느 공사 현장에서 말갑옷의 일부를 신고하여서 복원된 말갑옷도 볼 수 있습니다.
유물을 지키는 데는 나이가 상관 없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가야의 '번영'에 대해 전시 되어 있는 곳으로 가면 가야가 이웃과 화합을 이루며 교류를 하고 번영을 한 것에 대해 알 수 있습니다. 그 곳에 전시 되어있는 배 모양토기는 실제 배를 본 떠 만든 토기 입니다. 이것으로 알 수 있는 사실은 가야는 주변국과 교류를 많이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가야가 가장 많은 교류를 한 나라는 백제와 왜라고 합니다.
마지막 전시실은 '디아스포라'입니다..
가야는 진흥왕(신라)에 의해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신라는 가야를 정복하기 위해 많은 공을 들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번번히 백제와 왜가 동맹으로 유지했으나 군사기밀이 넘어가서 가야가 멸망하게 됩니다.
가야는 역사속으로 사라졌지만, 진흥왕이 가야금을 좋아해서, 가야금은 여전히 '가야금'이라고 불립니다.
그리고 현재까지도 가야금은 전해지고 있습니다. 마지막 나가기 전에 24현으로 재구성한 가야금을 만나 볼 수 있습니다.
[가야본성 칼과 현] 가야 특별전을 관람하고 가야는 우리가 알고 있는 일반적인 국가의 형태는 아니었지만 굉장히 번성한 고대 국가였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째서 삼국시대라 불리는 시대에 가야는 포함되지 않을까라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대략 500년 동안 가야국이 존재하였으나 기록이 많지 않고 한강 유역을 차지 못했었기 때문에 삼국시대에 포함이 되지 않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후에 가야에 대한 자료가 많이 발굴 되면 어쩌면 삼국이 사국시대가 될 날도 오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글쓰기 평가어린이과학동아 기자2020.02.17
시우 기자, 가야 전시 박물관 취재 후기 글 잘 봤어요. 무척 긴 글, 많은 사진.. 정말 정성을 들여 쓴 글이라는 게 느껴졌어요. 전시하면서 이렇게 내용을 잘 배우고 오기가 쉽지 않았을텐데 메모도 열심히 하고, 선생님의 설명도 잘 들은 것 같네요. 시우 기자의 글만 잘 읽어도 전시를 다녀온 것 같은 효과를 누릴 수 있을 정도로 가야에 대해 알찬 내용을 잘 정리했어요. 중간 중간 자신의 생각, 느낌도 적절하게 잘 표현했어요. 긴 글임에도 문장력도 좋았고, 맞춤법 실수도 거의 하지 않아서 완성도가 높은 글이에요. ^^ 기사 잘 봤어요.
[여러가지] → [여러 가지], [알수] → [알 수]
금관가야-(김해)김수로왕
대가야-(고령)이진아시왕
아라가야-(함안)아로왕
소가야-(고성)김말로왕
비화가야-(창녕)고로왕
성산가야-(성주)벽로왕
6가야 별로의 시조로 전해지고 있는 왕들입니다. 참고하셔도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