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과학동아&수학동아 기사
[숭례문]숭례문의 숨겨진 비밀
국보 1호 숭례문은 600년 동안 우리를 지켜주고 있는 자랑스러운 건축물입니다. 숭례문은 서울 둘레를 둘러막은 성벽에 동서남북으로 난 서대문 가운데 하나입니다. 조선 초 궁궐의 위치를 정하고,도로를 만드는 등 도시설계를 할 때 만들어진 문입니다.
조상들의 지혜와 땀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숭례문이 몇 년 전 불에 타서 안타까운 일을 겪기도 했지만 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정성으로 숭례문은 당당하게 우리 곁으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평소에 숭례문을 지나갈 때 마다 가지고 있었던 여러가지 비밀에 대해서 풀어 보고 싶습니다.
첫째, 일본이 숭례문을 파괴하지 않고 국보 1호로 지정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숭례문이 국보 1호로 지정된 시기는 일제시대부터입니다.
일제시대에 숭례문을 국보 1호로 지정했는데 그 까닭은 임진왜란때 가장 먼저 한양에 입성한 가토 기요마사가 들어온 문이 바로 숭례문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왜 '1호' 로 지정했을지 궁금증이 생깁니다.
별다른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다른 문화유산보다 가치가 월등해서도 아니고, 단순히 전국에 산재한 문화유산을 관리하기 편하도록 임의로 부친 목록 번호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국보 일련번호를 두는 것은 전 세계적으로 우리나라가 거의 유일하다고 합니다. 광복후에도 일제가 지정해 준 국보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둘째, 숭례문의 글자는 왜 가로가 아닌 세로로 쓰여 있을까요?
숭례문 현판은 소나무로 만들어 졌습니다. 검은색 흑칠을 한 바닥판에 양각으로 글씨를 돋을새김하고 백분(白粉)을 칠한 것은 조선시대 궁궐 현판의 전형적인 제작방식입니다. 하지만 3~4자로 이뤄진 현판이 대부분 가로 글씨인 것과 달리 숭례문 현판 글씨는 세로로 쓰여져 있습니다. 조선시대 궁궐이나 도성 현판 중 세로형 현판은 창덕궁의 어수문(魚水門)을 비롯해 5건에 불과합니다.
세로로 쓰여진 이유를 사람들은 두가지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가장 많이 거론되는 것은 조선시대의 풍수지리학과 관련이 있는 관악산 화기설(火氣說)입니다. 한양의 지세(地勢)를 풍수학적으로 봤을 때 조산(朝山)인 관악산에 비해 궁궐이 있는 한강 북쪽의 지세(地勢)가 너무 약했습니다. 그리고, 모양이 불꽃과 같아 화기를 띄고 있다고 하여 한성의 조산인 관악산은 화산(火山)으로 지칭되었는데, 그 당시에는 이 관악산의 화기가 도성안은 물론 경복궁에까지 미쳐 화재를 일으킬 수 있다고 믿었었습니다. 이를 예방하기 위하여 음양오행 중 화(火)에 해당되는 예(禮)자와 불꽃 모양의 숭(崇)자를 세로로 배열하여 마치 불이 활활 타오르는 것 같은 형상을 만듦으로써 관악산의 화기에 적극적으로 대처하려 하였다는 해석입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와 같은 정면대응 전략인 셈이었습니다.
숭례문 현판이 세로인 또 다른 이유는 조선은 예를 숭상하는 국가인데 이 문이 바로 조선을 상징하며, 예를 숭상하는 문으로서 공손함을 표한다는 의미로 세로로 하였다는 이야기입니다. 숭례문은 귀한 손님이 드나드는 정문이므로 귀한 손님을 서서 맞이하는 것이 예의에 맞는다는 의미도 있다고 합니다.
.
<세로로 쓰여진 숭례문 글자>
셋째, 숭례문의 글자는 양녕대군이 썼을까요? 신장이 썼을까요?
‘崇禮門’이라는 이름은 삼봉 정도전이 지었다고 합니다. 유교적 이상사회를 꿈꿨던 정도전은 조선이야말로 유교를 정치, 학문, 도덕의 근본으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현판 글씨는 이수광의 지봉유설에 따르면, 태종의 장남이며 세종의 맏형인 양녕대군 이제(1394∼1462)가 쓴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현판 자체에 글 쓴 사람의 낙관이 없고 실록 등에도 정확한 기록이 없어 신장,안평대군,정난종,유진동 등이 숭례문 현판 글씨를 쓴 인물로 꾸준히 거론돼 왔습니다. 그 중 주요 인물로 언급되는 이가 양녕대군과 신장, 그리고 유진동입니다.
양녕대군은 태종의 명을 받아 경복궁 경회루(慶會樓)의 현판을 썼을 만큼 필력을 인정받았습니다. 고종 때 간행된 것으로 추정되는 인문지리서 『동국여지비고』(東國輿地備攷)에는 “정남쪽 문을 숭례문이라고 하는데, 양녕대군이 현판 글씨를 썼으며 민간에서는 남대문이라 부른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19세기까지 양녕대군이 공식적인 숭례문 현판의 서자(書者)로 인식돼왔음을 보여줍니다.
이 편액은 임진왜란 때 분실 된 적이 있었는 데, 몇년 뒤인 광해군 시절 어느날 밤 지금의 서울 청파동 한 도랑에서 서광이 비치기에 파보았더니 바로 이 숭례문 편액이 있어서 되찾았다는 이야기도 전한다고 합니다. 그 만큼 사연이 많은 편액입니다.
<화재로 파손된 현판(왼쪽)과 새롭게 복원된 모습(오른쪽)>
넷째,숭례문은 서울을 대표하는 상징적인 디자인일까요?
태조 때 조선의 개국과 더불어 창건된 숭례문은 조선의 도성 정문으로, 몇 개 안되는 조선 초기 건물로서의 역사적 가치가 고스란히 담겨져 있습니다. 건축사적인 가치와 아름다운 건축양식을 지닌 숭례문은 국보 1호라는 호칭에도 그 상징성이 유지되고 있는 것입니다.
한양의 정문(正門)인 남대문은 동대문보다 그 규모가 더 크고 그 중요성도 컸습니다. 건축 기술면에서도 남대문이 차지하는 비중이 동대문보다 더 크다고 여겨집니다.
3층 누각으로 지어진 지붕의 처마곡선은 살며시 하늘로 들려 올려져 있는데 정말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이렇게 부드러우면서도 결코 가볍지 않은 우아하고 자연스런 곡선미는 중국에서도, 일본에서도 볼 수 없는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문화입니다. 그리고, 가지런한 공포와 서까래는 흐트러짐 없는 맑고 깨끗함과 당당한 위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얼핏 화려한 것 같지만 선을 넘어서지 않는 듯한 절제된 모습이 느껴지고,더하지도 덜하지도 않게 차분하고 단정한 깊은 멋이 우러납니다.
숭례문은 서울 도성의 정문이자 얼굴 격입니다. 가장 규모가 크고 오래 된 대표적 성문인 데다 국보 제1호라는 의미까지 더해져 대한민국의 상징이자 국민의 자존심처럼 여겨온 건축물입니다. 숭례문은 고려시대에서 조선시대로 넘어가는 전통 목조건축의 변화상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건축물이기도 하다. 오로지 나무를 깎고 짜맞추는 방법으로 복잡하면서도 더없이 화려한 ‘다포식’ 양식을 만들어낸 선조들의 지혜가 담겨 있습니다.
다섯째, 숭례문 기둥에는 왜 소나무를 사용하였을까요?
삼국시대나 고려시대에는 느티나무가 소나무보다 더 높은 평가를 받으며 궁궐이나 중요한 목조건물을 지을 때 많이 쓰였다고 합니다. 내구성은 느티나무가 더 좋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이지만 실제로 조선시대에는 소나무가 널리 쓰였습니다.
느티나무를 사용하지 않고 소나무를 사용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고려 말기 몽골의 침입이나 무신정변 같은 사회 혼란을 겪으면서 축대벽을 쌓거나 건물을 짓느라 숲 속의 느티나무를 마구 벤 탓이라고 합니다. 간혹 마을 인근에 느티나무가 자랐지만 이런 나무는 쓸 수 없었고, 울창한 숲 속에서 자란 나무는 ‘콩나물’처럼 곧고 기다란 형태를 지닌다고 합니다. 반면 열린 공간에서 자란 나무는 키가 2~3m만 자라도 가지가 사방으로 돋아나 기둥으로 쓰기에는 부적합했다고 합니다.
궁궐이나 사찰 같은 목조건물을 지으려면 10m 이상 곧게 자란 나무가 필요했는데 기둥으로 쓸 수 있는 나무가 필요했던 조선 왕조는 느티나무를 대신해 숲에 늘어난 소나무에 주목했습니다. 특히 경북 봉화나 울진, 강원지역의 금강소나무나 안면도 소나무는 전봇대처럼 곧게 자라나 이 조건에 맞았고 이 지역은 민가에서 소나무를 함부로 베어내지 못하도록 출입을 막았다고 합니다.
여섯째, 숭례문은 누가 관리를 할까요?
서울 중구가 맡아 관리해 온 국보 제1호 ‘숭례문’을 문화재청이 직접 관리를 합니다. 서울시와 중구청의 요청과 국보 1호인 숭례문의 상징성, 그에 따른 국민 정서를 고려해 국가기관인 문화재청 맡기로 한 것 입니다.
그동안 숭례문은 1968년부터 1995년까지 서울시가 관리했고, 1995년 이후부터는 중구가 관리를 담당해왔습니다. 문화재청은 숭례문 복구가 완료되는 시점부터 직접 관리하게 되고, 복구 이후의 관리방안도 마련 중입니다.
.
<사진출처>
http://blog.daum.net/munhwajaecheong/17919193
http://article.joins.com/news/article/article.asp total_id=16915083&cloc=olink|article|default
http://article.joins.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10309635
http://www.hallyunet.com/bbs/board.php?bo_table=l004&wr_id=51#.VNgem1SwdhE
<자료출처>
대한민국 국보 1호 숭례문/이규희 지음/윤상설 그림/처음주니어
http://blog.daum.net/munhwajaecheong/17919193
서울디자인 자산
widecoverage.co.kr
글쓰기 평가현수랑 기자2015.02.09
숭례문에 대해 궁금한 점을 재미있게 잘 설명했군요. 흠잡을 곳이 없네요 ^^ 잘 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