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소개(1) 드미트리 멘델레예프

2020.08.06



사진 출처: wikimedia commons



     



 



안녕하세요 정하윤 기자입니다.



시작하기 전 질문을 하나 하겠습니다. 여러분은 주기율표,하면 누가 생각나나요??? 저는 멘델레예프가 생각이납니다. 그래서 오늘은 "맨델레예프"라는 주제를 가지고 왔습니다. 먼저 앞서서 멘델레예프에 대한 소개를 하겠습니다.



 



그는 토블스크현(1796~1920년까지 존재했던 러시아 제국의 현)의 어려운 가정에서 태아났습니다. 그는 어렸을때 부터 불행을 만하이 겪었습니다. 또 정식 공부를 하려고 아주 애를 썼지요. 그리고 또 끝내 노벨상을 받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럼 소개는 이쯤에서 마치고 본격적으로 멘델레예프 이야기를 시작하겠습니다. 



 



멘데레예프는 1834년 2월 8일 토블스크현에서 11,13,혹은 17명의 자녀 중에서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기록 마다 자녀수가 다릅니다.)태어났습니다. 그가 태어난 해에는 아버지가 눈이 멀게 되어서 그때 부터는 어머니(마리아 드미트리브나)가 가족의 삶의 책임자가 되었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어머니의 가족의 유리공장을 되살려 살림을 꾸려나갔습니다.  그러나 1847년에는 아번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의 유리공장은 화재로 파괴되었습니다. 그런 불행이 닥치고 2년후에는 어머니가 고등교육을 시키겠다는 목표로 남은 두 자녀인 리자와 멘델레예프를 데리고 모스크바로 향했습니다. 거기서 대학을 지원했으나 떨어지고 다시 상테부르크로 향했습니다. 거기서 상황이 달라지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돌아가신 아번지의 친구분의 도움을 받아 Main Pedagogical Institute에 들어갔습니다. 멘델레예프가 그 단체에 들어간지 10주도 체 안되어 어머니가 돌아가지고 2년 후에는 결핵 진단을 받아 수개월 밖에 못 산다는 말을 듣기도 했습니다. 1869년에는 러시아 화학회에서 주기율표에 대한 주장을 발표하고 원소의 일정한 규칙에 따라 나열하여 아직 발견되지 않은 원소의 성질을 예측할 수 있다는 주장도 발표했습니다. 신기한 것은 실제로 그가 예측한 성질과 맞아 떨어진 사례가 몇 가지 존재 합니다.



 



제일 아쉬운 것은 그는 노벨상 후보에 올랐지만 헨리 무어상이 그 노벨 화학상을 수상했습니다. 그래서 멘델레예프는 끝내 화학상을 수상하지 못하고 사망했습니다. 왜냐하면 그에게 노벨상을 수상 하려던 해에 사망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멘델레예프가 노벨상을 수상하지 못한게 넘 아쉽습니다. 왜냐하면 전 원소 하면 주기율표가 주기율표 하면 멘델레예에프가 생각나기 때문입니다. 멘델레예프는 과학계의 영향을 크게 준 사람입니다. 그가 죽어서 아주 좋은 곳을 갔기를 기원하면서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지금까지 정하윤 기자였습니다. 안녕히계세요


글쓰기 평가어린이과학동아 기자2020.08.07

주기율표 하면 생각나는 과학자, 멘델레예프의 일생을 소개해주었네요. 왜 이 과학자를 소개하고 싶었는지, 글을 통해 하윤 기자의 생각을 잘 알 수 있었어요. 다만, 어떤 인물에 대한 소개 글을 쓸 때 시간의 순서대로 무엇 무엇을 했다는 내용을 많이 쓰면 조금 지루한 느낌이 들 수 있어요. 사람을 소개할 때 반드시 태어났을 때부터 죽을 때까지 시간순으로 소개할 필요는 없다는 걸 알아두면 좋을 것 같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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