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국가의 작곡가가 친일파였다??

2020.11.09

 애국가는 우리나라의 국가이다. 학교에 다니는 학생은 줄줄이 외우고 다닐 정도로 우리에게 친숙한 노래 중 하나이다. 우리나라를 상징하는 노래 중 하나이며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1절 정도는 누구나 외우고 다닌다. 애국가를 들어보지 못한 우리 국민은 없을 정도인데, 이런 애국가는 사실 만들어진지 100년이 채 넘지 않았다. 애국가 노래 자체는 한국 사람들에겐 정말 흔하지만 막상 이런 애국가의 작곡가의 이름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애국가도 엄연한 노래이니 작곡가가 있을 것이지만 이 애국가의 작곡가는 우리에게는 생소하기 마련이다. 그의 이름은 안익태라고 한다.





 애국가는 안익태라는 사람에 의해 작곡되었다. 안익태는 스페인 국적이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교회에서 찬송가를 부르며 음악을 접하게 되었다. 어린 시절에 큰형 덕분에 바이올린을 배우게 되었고, 곧이어 트럼펫도 연주할 수 있게 되었다. 또 중학교에 입학한 후에는 오케스트라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후 첼로도 접하게 된다. 그는 3.1운동 이후 친일교사 데모 시위를 벌인 주동자로 무기정학 처분을 받기도 하였지만 일본에서 학교를 다니게 되었다. 또한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음악 학교를 다니기도 하였다. 1935년 음악학원을 다니며 기본을 다지다가 유럽의 베를린으로 건너가서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애국가를 작곡하고 해외에 있는 다른 동포들에게도 애국가를 전달하게 된다. 그다음 오스트리아에서 베토벤의 음악을 배우게 되고, 나중에 슈트라우스의 손녀를 구해주게 됨으로서 슈트라우스가 총애하는 제자가 되었다. 이 무렵 독일 나치 제국에 협력하는 <일본축전곡>을 연주하며 애국가의 정당성에 물음표를 달았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결혼하게 되어 스페인의 국적을 얻게 되었는데 이때 미국에서 오케스트라를 연주하려다가 나치에 협력한 슈트라우스의 수제자라는 이유로 미국에서 거절을 당하게 된다.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며 그의 애국가가 정식 국가로 인정 받았지만 정작 그는 그 사실을 뒤늦게 알고 귀국 준비를 하다가 스페인에서 생을 마감하게 된다. 결국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생을 마감하게 되는 결말이다.





 안익태는 처음에는 반일시위를 주도하며 자신의 고국을 향한 애국심을 불태웠지만 점차 시간이 지나며 그는 결국 일제에 간접적으로 협력하게 된다. 그를 무조건 좋다고만 평가할 수 없다. 친일 행위는 간접적인 행위라도 고국을 배신하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결국 그의 이름은 <친일인명사전>에 적히게 된다. 애국가의 뒤편에 이런 뒷이야기가 숨어있었다. 우리나라를 상징하는 애국가의 작곡가의 이름이 <친일인명사전>에 적혀 있으니 참 아이러니하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의 국가인 애국가에 대해서도 다방면으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는 것을 다시 느낀다.



 


글쓰기 평가어린이과학동아 기자2020.11.10

애국가를 작곡하신 안인태 선생이 친일인명사전에 올라가 있다는 사실이 정말 안타깝기도 하고, 아이러니하다는 생각에 공감해요. 한 인물을 볼 때 여러 각도로 바라봐야 하는 이유기도 하죠. 업적은 업적이고, 또 안타까운 면은 안타까운 면이라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안익태 선생에 대한 자료도 많이 조사해서 정리해주었고, 자신의 생각도 문장으로 잘 표현해주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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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2
네 맞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