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화진 100주념 기념 교회를 다녀오다. 양화진에 대하여

2015.08.25




우리 가족은 양화진에
갔었다.



양화진은  20세기 초반까지 외국인들을 매장하는 외국인 (외국인 선교사) 공동 묘지였다.



양화진이 외국인
공동묘지가 된 이유는 제중원 2대 원장인 외국인 의사 존 W. 헤론이
죽어서 그를 매장할 곳을 찾다가 양화진을 발견하여 그 곳에 매장한 것이다.



지금 양화진에는
140여명에 선교사님 묘와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나머지 묘지들이 있다.




그리고 양화진
근처에 있는 대교는 양화 대교라고 한다.



 그리고
우리 가족은 가자마자 선교사님들 다큐멘터리를 보았다.



다큐멘터리에는 존 W. 헤론 선교사,  윌리엄 홀,  로제타 홀, 그들의 아들 셔우드
홀과 그의 아내, 언더우드 선교사와 그의 가족, 아펜젤러
선교사, 스크랜턴 대부인 등 많은 선교사님들의 영상을 보고 거기에 있는 100주년 교회의 권사님께서 선교사님들의 묘지와 그 선교사님이 하신 업적을 설명해 주셨다.



언더우드 선교사님은 의사 학교을 세우셨는데 현재에는 연세대가 되었고, 조선을
너무 사랑하셔서 한국 이름도 지으셨다.



그리고 듣기에는 지금도 언더우드의 자손들은 세브란스 병원에서 일한다고한다.



그리고 언더우드 선교사 부부는 고종 황제와 명성 황후(민자영)과 친하였다고 한다.



 아펜젤러
선교사님은 배제 학당을 지으셨는데 현재에는 배제 초중〮고〮 대학이 되었다고한다.



아펜젤러
선교사님은 배를 타고 가던 도중 바다에 빠진 여학생을 구하다 순교하셨다.



 스크랜턴 대부인은 우리 조선의
여자 학교를 세우기 위해 52세에 늙은 나이로 오셔서 여자들을 위한 이화 학당을 세우셨다. 거기에 다닌 여자들은 다른 여자들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였다.



이화
학당은 현재 이화여대가 되었다.



 윌리엄 홀과 로제타 홀은
죽을 때까지 환자들을 치료하였다. 그리고 그들의 아들인 셔우드 홀과 그의 아내는 결핵 환자를 치료하고, 치료비와 의학 도구를 살 돈을 모으기 위해 크리스마스 씰을 팔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우리 가족은 선교사님들의
유품을 전시한 전시관으로 이동하였다.





곳에는 선교사님들의 유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그리고 거기서 성경이 선교사가 들어 오기 전부터 성경책은
조선에 들어와있었다. 만주에서 복음을 전하던 선교사 러스가 중국과 조선 국경에서 이수정이란 사람을 만나서
그와 함께 한글로 성경을 번역하였다.



그래서
언더우드 선교사는 나는 이 나라에 씨를 뿌리러 왔지만 오히려 열매를 거두게됬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우리나라가 광복이 된지 100년도 지나지 않았는 데도 이렇게 발전 할 수 있었던 계기는 선교사님들이
세우신 학교, 병원 등이 있어서이고, 선교사님의 노력과 조선을
향한 사랑 덕분에 우리나라가 지금에 대한민국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좋으신 선교사님들을 보내 주신 하나님과 예수님께 감사해야된다.



그리고
선교사님들이 들어오기도 전에 한국말로 번역한 성경이 들어온 게 감동적이다.



선교사님들은
자신의 가족이 죽어도 꿋꿋하게 조선에서 선교 활동을 하신게 정말 대단하다고 느껴진다. 나라면 그런 일은
상상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선교사님들은
이처럼 조선을 사랑했다는 것을 몸소 느낄 수 있다.



우리나라와
조선과 조선의 백성을 사랑해서 자신의 남편과 자식까지 모두 이 땅에 묻고 이땅을 위해 헌신하신 모든 선교사님들께 감사드립니다.



 






 




글쓰기 평가현수랑 기자2015.08.31

우리나라를 위해 헌신하신 선고사분들의 업적을 알리는 기사로군요. 그런데 중간에 종교적인 감상이 눈에 띄어요. 기사를 쓸 때는 자신의 종교와 정치적인 입장 등을 배제하고 기사를 써야 많은 사람들에게 신뢰받는 기사가 될 수 있답니다. 참고해 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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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
넹~^^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