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사의 회장님,정주영

2021.02.26

 



안녕하세요!김현재 기자입니다.요즈음까지도 자동차를 생산하는 H사,다들 아시죠? 이번 기사에서는 이 H사의 역사를 다루려고 합니다.



그러면 기사 시작할게요![참고 내용:위키백과],[나무 위키]



 



H사는 정주영 H사 회장님이 세우셨다고 해요. 대한민국의 기업인이시고,H사의 창업자이자 명예회장으로 동생들과 아들들이 모두 회장이라고 하네요. 이 분은 소학교(일본의 초등학교)졸업 하셨는데요,하지만 H사를 세우셨지요!! 그래서 산업화의 상징처럼 기억되는 인물이라고 하네요.



 



1998년에 소때를 이끌고 방북한 것을 계기로 금강산 관광까지 유치한 대북사업의 선구자이시기도 하다고 해요.



2006년 미국 타임*가 선정한 아시아의 영웅들 리스트에도 포함되시기도 하셨다고 합니다.



 



현대자동차 로고_HYUNDAI_일러스트레이터(AI) 벡터 파일



[출처:위키백과],[이것조것 블로그] 위 사진은 1974년 부터 1992년까지 사용 된 H사의 로고입니다.



 



이분은 젊은 시절 가출을 하시고 아버지께 도로 끌려간 적도 있으셨다고 하는데요,후에 다시 가출하셔서 막노동 일을 해 서울에 정착하셨다고 해요. ㄱ 대학교 공사장 용산역 근처의 현재의 ㅇ 사에서 닥치는 대로 일하셨다고 합니다.



 



신당동의 쌀가게 복흥 상회에서 점원으로 일하시다가 쌀가게 주인이 성실하게 일해온 정주영 회장님께 가게를 매도하여 3년 뒤 쌀가게 



경일상회를 차리셨지만 일제가 쌀 배급제를 시행하며 가게가 자연스레 문을 닫았고,



이후에도 아도 서비스라는 자동차 수리공장을 세워 직원이 80명에 달할 정도로 크게 운영하셨지만 화재로..



 



평소에 회장님의 행동을 눈여겨 보았던 오윤근 께서 거금을 빌려주셨고,정주영 회장님께서는 돈을 갚으셨지요.(휴!)



 



1947년에는 지금 H사의 토대가 되는 H 토건사를 게우셨는데,주한미군 통역장교로 일하시던 손아랫동생 정인영의 도움으로



주한미군 관련 공사를 싹쓸이 하며 창립 10년만에 전국 10대 건설사로 성장했습니다.



 



정주영 회장님의 시련은 고령교 공사였다고 해요.1935년 처음 개통되었지만 6.25전쟁 때 폭파 되어 H건설이 복구에 나서지만



사실상 말만 복구지 거의 신축공사에 가까웠다고 하는데,건설 장비 부족,사고도 일어난 데다 물가도 올라 월급마저 줄어 인부들께서



파업을 하셨을 정도라고 해요.



 



하지만 동생 정순영의 기와집과 매제 김영주의 집,옛 자동차 수리공장까지 팔아가며 공사 끝!



 



*음..이야기가 길어질 수 있으니 조금 건너 뛸 게요.*



 



오늘은 명언까지만 살피고 갈께요."마지막에 마지막까지 다하는 최선"



"스스로 운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 한은 나쁜 운이란 없다"



 



오늘 소개해드린 외에 많은 내용이 있지만 여기서 마치도록 할게요!기사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글쓰기 평가어린이과학동아 기자2021.02.26

현대자동차의 장업주인 고 정주영 회장의 일대기와 현대자동차 회사의 역사를 소개하고 싶었던 건가요? 그런데 이 글을 통해 현재 기자가 어떤 점을 전달하고 싶은건지 글의 핵심을 잘 알기가 어려웠어요. 정 회장님의 일생을 통해, 또 기업의 역사를 소개하면서 현재 기자는 어떤 말을 하고 싶었나요? 글은 글을 쓰는 사람의 생각이 드러나는 것이 중요해요. 정보를 소개하는 것에도 글을 쓰는 사람의 의도가 있지요. 다음 글을 쓸 때는 자신의 생각을 글에 좀 더 표현해 보면 좋겠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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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9
댓글 달아주신 기자님들 모두 감사해요!
이 기사가 어린이 신문 동아에 나왔네여
네 맞아요! 정독해주셔서 감사해요!
잉? 왜 글쓰기 평가가 2개에요?!
그러게요ㅠㅠ
앗!제 생각 담기를 잊었네요;
위에건....... 뭐죠?
저 이제야 봤네여

실명 언급 안됩니다!
오류 인 것 같아요.리안 기자님께서도 보이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