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과학동아&수학동아 기사
조선의 신문, 조보에 대해 알아보자
안녕하십니끼? 송재원 기자입니다.
혹시 조선시대에 신문이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으신가요? 조보는 '조정의 소식' 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요, 그래서 신문사에서 직접 편찬하는게 아니라 조정에서 직접 만든다고 합니다. 다른 말로는 '저보, 기별, 기별지'라고 불렸다고 합니다. 중종때에 처음 편찬된 것으로 보입니다. 일찍이 중국에서는 조보와 비슷한 매체를 발행했다고 합니다. 조보는 승정원에서 만들었는데요, 승정원은 지금의 대통령 비서실과 비슷한 곳입니다. 왕의 명령이 모두 이곳을 거쳐 나오고, 또 왕에게 올리는 각종 보고서나 상소문이 이곳을 거쳐 왕의 손으로 들어왔다고 합니다. 조보를 만드는 과정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우선 승정원은 정보를 수집합니다.정보가 넘쳐나기에 인터뷰는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것이 기사가 되는 것이죠. 그 다음 승정원에서는 그 기삿거리들을 정리하여 발표합니다. 그런 뒤에 각 관청에서 나온 기별서리들이 재빠르게 기사를 베껴씁니다. 이것이 바로 요즘 신문이 만들어지는 과정과 다른 점입니다. 기별서리들은 매우 특이한 글씨체인 '기별체'로 조보를 쓰는데 이 기별체는 매우 알아보기 어려워 익숙해질 때까지 여러번 보아야 겨우 읽을 수 있다고 합니다. 이렇게 조보가 다 완성되면 기별서리들은 각자 자기가 속해 있는 관청으로 갖고가 필요한 수만큼 더 베껴 써서 배달해 줍니다. 조보 뒷면에는 배달받을 사람의 직책이나 이름을 써서 배달해 준다고 합니다. 이때 배달해주는 사람을 '기별군사' 라고 합니다.
구독료는 관리들의 직책마다 다르게 냈다고 합니다. 높은 관직을 가지고 있는 관리일 수록 높은 구독료를 내고 직책이 낮은 관리일 수록 낮은 구독료를 냈다고 합니다. 또 한양에 사는 관리는 바로 그날 아침에 조보를 받아 볼 수 있었지만 먼 지방에 사는 관리들은 5~10일이 지나서야 조보를 받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조보는 왜 일일이 손으로 베껴 썼을까요? 바로 소수의 사람들만 정보를 독차지하기 위해서입니다. 선조 시대, 조보를 인쇄하여 돈을 받고 팔다가 걸려 크게 혼쭐난 적이 있었는데요, 이때부터 조보를 인쇄하는 일은 금지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평민들이 읽을 수 있게된 조보는 3개월만에 폐지된 것이죠. 조보에는 주로 왕에게 올린 상소의 내용, 조정의 결재 사항, 관리의 승진과 사망소식, 왕의 명령이나 지시사항,계절에 관한 기사등이 담겨있었다고 합니다. 농사가 매우 중요했기 떄문에 계절에 관련된 기사는 꼭 실렸다고 합니다.종종 ' 달걀만한 우박이 내렸다.' '발이 네개인 병아리가 태어났다.' 등 특이한 자연현상이나 날씨에 관한 기사도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급히 알려야 할 소식은 분발 등으로 알렸다고 합니다. 하지만 중국과의 외교 문제를 일으킬지도 모르는 내용은 조보에 담기를 금지했다고 합니다. 이런 내용들을 담고 있는 조보는 [조선왕조실록]을 편찬할 때 중요한 자료로도 쓰였다고 합니다. 왕도 조보를 보았는데 그 일을 따로 담당하는 관리가 있었다고 합니다. 이 관리는 기별체로 쓰지 않고, 바른 글씨체로 또박또박 썼다고 합니다.
왕이 보는 조보
출처: 한국사편지3(제가 직접 찍었습니다.)
조보는 발행된 이후 하루도 빠짐없이 발행되었지만 1894년 갑오개혁 이후 폐지되었습니다. 조보이후 관보가 발행되었는데, 마찬가지로 나라의 소식을 담은 소식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관보는 아직까지도 발행되고 있다고 합니다. 조보는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었지만 조선시대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입니다. 이상 송재원 기자였습니다. 감사합니다.
-
글쓰기 평가어린이과학동아 기자2021.06.14
조선시대 신문과 같아던 조보에 대해 자료 조사를 많이 하고 정리한 글이네요. 조보가 무엇인지, 또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등 궁금한 것에 대해 충분히 알 수 있도록 잘 정리했어요. 또 글의 시작부터 본론, 마무리까지 구조도 안정적으로 잘 완성해 주었어요. ^^
마지막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