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과학동아&수학동아 기사
제2차 화석 발굴 여행: 포항 신생대 마이오세 퇴적층 다양한 화석의 보고
지난번에 포항으로 떠난 화석 발굴 여행은 너무나도 큰 아쉬움을 남겼다. 아빠와 나의 스케줄을 어렵게 맞춰서 떠났건만 나뭇잎 화석만으로 만족해야했다. 물론 그것만으로도 좋았지만 곤충 화석 혹은 어류나 어패류 화석을 하나라도 관찰하기를 원했는데 그러지 못해서 무척 아쉬웠다.
하지만 기회는 다시 찾아왔다. 지난 2월 27일 아빠와 함께 부푼 기대를 안고 포항으로 내달렸다. 오전 9시부터 시작된 발굴 작업은 6시간이 지났음에도 큰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마치 서울에서 김서방 찾는 식이라고 할까.
이번에는 여러 전문가들의 도움(특히, http://blog.naver.com/paleozoic 참고)과 정보를 종합해"영일만 일반 산업 단지"를 찾아가기로 했다.
문제는 내비게이션에 영일만 일반 산업 단지라는 지명이 검색조차 되지 않는다는 데 있었다. 포항IC에서 들어오자마자 일단 차를 한편에 세우고 아무리 검색해보았지만, 도무지 찾을 수가 없었다.결국 집에 계시던 엄마에게 부탁해서 찾아낸 죽천리라는 주소 하나만 믿고 무작정 달려갔다.
죽천리로 접어드는 사거리에서 처음으로 일반 산업 단지라는 간판을 보았을 때 마치 거대한 고래의 척추 화석이라도 찾아낼 기세였다.
거기서부터는 지난번 북부해수욕장 근처의 노두와 같은 이암 군락지가 펼쳐졌다. 도로 확장을 하기 위해서 싹둑 잘라낸 산자락에 연한 갈색의 이암층이 벌거벗은 듯이 드러나 있다.
하지만 나뭇잎 화석 이외에는 어떤 것도 찾을 수가 없었다. 심지어 북부해수욕장 노두의 것보다도 형편없는 것들이라 실망이 여간 크지 않았다.
죽천리로 들어서는 해안도로 내내 차를 세워서 살펴보기를 십여 차례 반복했다. 어느덧 온몸이 아프고 아직은 찬 바닷바람에 머리는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우뚝 솟은 포항제철의 관제탑을 보니 기분이 묘했다. 내비게이션에는 영일만으로 검색하고 내달렸다.
우리나라의 산업화를 이끈 포항제철의 웅장한 모습. 1968년 포항종합제철(주)로 설립되어 2002년 3월 15일 지금의 사명으로 변경하였다.
맞은편에 현대제철도 자리하고 있다. 1982년 국내 업계로는 최초로 대형 구조물 골조로 사용되는 H 형강을 생산했다. 인천제철로 시작한 이 회사는 우리가 잘 아는 H 형강을 만들어냈는데 이 회사의 로고와도 묘한 조화를 이루고 게다가 현대제철의 첫 이니셜이 H이기도 하다.
근데 계속 가다 보니 포항 신항만 쪽으로 가는 길 위에 있었다. 게다가 주위를 아무리 둘러봐도 이암 군락지는커녕 바다만 휑하니 보였다.
내가 지금 웃고 있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마음속은 저 굴뚝보다 더 뜨거웠다.
우여곡절 끝엔 만난 영일만 일반 산업단지를 가리키는 표지판. 이것만으로도 큰 위안이 되었다. 내비게이션으로는 검색이 되지 않는 지명이었다. 여기를 찾아오실 분들은 죽천리를 검색하시면 된다.
기쁜 마음에 달려가 몇 개를 주워 만져보니 뭔가 푸석푸석한 이암 일 뿐이었다. 그 흔한 나뭇잎 화석 조각 하나 볼 수 없었다.
답답한 마음에 위로 올라가 보지만 아무 성과도 없었다. 워낙에 미끄러워서 저런 포즈로 5분 이상 버티기도 힘들었다. 아빠는 아예 불가능..^^
이번에는 덩치 큰 이암들을 쪼갤 생각으로 정까지 준비해 갔다. 웬만한 이암들은 다 쪼개보았다. 아직도 손이 얼얼하다. 꽤 넓고 긴 이암 군락지였지만 아무런 소득도 없었다.
이암의 특성상 자꾸만 아래로 흘러내린 탓에 뿌리를 드러낸 저 소나무도 조만간 쓰러질 판국이었다. 혹시라도 모를 사고를 대비해서라도 무리하게 이암층을 건드려서는 안된다.
화석 하나 없이 차로 돌아온 우리에게 남은 건 온통 가막사리 뿐이었다.^^
다시 죽천리를 향해 차를 몰고 5분 정도 들어가니 "영일만 일반 산업단지 "라는 간판이 우리를 반겨준다. 뒤쪽의 멋진 바다 풍경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왠지 멋진 화석이 후드득 떨어질 것만 같았다.
쪼개고 또 쪼갰다. 지나가는 한동대 스쿨버스에서 대학생 형들이 쳐다보았다. 어쩌면 그 형들도 이미 나처럼 뒤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왠지 뭔가 그럴싸한 화석이 이 소박한 절벽 속에 잔뜩 숨어 있을 것만 같다. 갯가재 백 마리쯤은 나올 기세다. 하지만 나뭇잎 한 조각도 내어주지 않았다.
뒤지다가 난데없는 사마귀 알집을 발견했다. 가지고 오고 싶었지만, 엄마가 알면 기절하실까 봐 그냥 두었다. 지난번에 요 녀석들을 화석 보관함에 두었더니 며칠 사이에 수백 마리의 사마귀들이 부화해 있었다.^^ 어쩌면 지금도 우리 집 어느 구석에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고대 이집트의 파피루스 같은 이암들. 그래도 무늬만큼은 멋지다.
이 멋진 점박이 호피무늬와 나이테의 정확한 정체가 궁금하다.
가지고 간 붓은 아주 유용했다. 이암 자체가 푸석한 편이라 행여 흙먼지를 손으로 털다가는 화석 자체가 망가지기 십상이다. 전문가들이 쓰는 붓은 아니지만 나름 120% 활용했다.
찾던 생물 화석은 아니지만 그래도 나뭇잎 화석이라도 만나니 반가웠다. 3시간 만에 처음 본 화석이다.
온전한 화석은 아니지만 꽤 선명한 편이라 좋았다. 포항의 죽천리 해변도로 곁에 위치한 나대지에서 발견한 참나무(떡갈나무) 잎 화석이다. 신생대 마이오세 중 후반기인 1600만 년에서 1100만 년 전에 쌓인 퇴적층인 이곳에 서서 그 오래된 참나무 잎을 보고 있으니 정말 묘하고 신났다.
그야말로 허허벌판에 이런 이암들이 즐비하게 뒹굴고 있었다. 꽤 큰 것들은 결따라 정질을 했다. 하지만 큰 이암일수록 별 볼일 없었다.
근처에 떨어진 현생 참나뭇잎과 이암 화석 속의 나뭇잎은 같은 종류로 보인다. 최대 1600만 년의 세월 동안 변함없는 모습을 보인다. 이런 게 바로 화석탐사의 묘미가 아닐까.
아닌 줄 알면서도 뭔가 요즘 도자기의 무늬는 아닌 것 같아서 몇 조각 주웠다. 복이라고 쓰인 이 조각은 밥그릇처럼 보인다.
이 빗살무늬의 조각은 실제로 보면 색이 참 이쁘다.
작은 술잔으로 보이는 이 조각은 아랫부분이 무척 거친 것으로 보아서 솜씨 나쁜 도예가가 만들었거나 아니면 버린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이번에도 나뭇잎 화석만으로 만족해야 하는가 하고 심드렁해 있던 그 순간, 건너편 길가 쪽에 가파른 산자락의 이암 더미가 보이길래 아빠에게 부탁해서 마지막으로 10분만 살펴보고 가자고 부탁했다. 이미 서로가 지칠 대로 지친 상태였지만, 힘들게 포항까지 내려왔으니 지푸라기라도 잡아보자는 심정으로 가보았다.
유레카!!!
들어서자마자 덤불에 아무렇지도 않게 떨어져 있던 이암 한 조각! 그 위에는 샛노란 갯가재의 꼬리 부분 화석이 있었다. 오늘 하루의 고생이 눈 녹듯이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아빠와 함께 너무 기뻐서 춤이라도 출 분위기였다.
갯가재의 꼬리 부분이지만 무척 선명한 편이다. 그런데 어째서 윗부분은 톡 끊어졌을까?
어패류의 선명한 라인들이 잘 드러나 있다.
꽤 큰 가리비 화석도 만났다. 가운데에 전체적으로 금이 가 있어서 가져올 때 애를 먹었다.
갯가재처럼 보이기도 한데 조각들을 아무리 맞춰봐도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척추가 있는 것으로 보아서 어류 같기도 하다. 너는 누구니?
이제 드디어 두껍고 상세한 전문가용 화석도감이 필요하다. 궁금해서 잠을 잘 수가 없다.
꽤 완벽한 보존 상태의 작은 어류 화석. 이걸 실제로 이암 군락지에서 발견해보니 신기했다. 뭔가 복잡한 학명이 있을 텐데 내가 직접 채취한 것이라 더욱 알고 싶다.
요 녀석은 버드나무 잎 화석(Salix sp.)인데 잎맥만큼은 꽤 선명하다.
선명한 조개 화석의 조각.
이렇게 기쁨을 만끽하며 정리하던 중, 별안간 우리 앞에 나타난 동글동글하고 금빛으로 반짝거리던 작은 돌들을 발견했다. 언뜻 조개인 줄 알았으나 자세히 들여다보니 광물로 보인다.
볼륨과는 달리 굉장히 무거운 편이고 손가락으로 슥 문질러보니 고운 금가루가 좌르륵 떨어질 것처럼 반짝거린다. 긴장된 상태로 근처를 계속 파내던 중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완벽한 형태의 황철석. 손가락이 베인 듯 따가워서 살짝 집어내니 다름 아닌 황철석(Pyrite)이었다. 화학식은 FeS2, 황과 철을 주성분으로 한 광물인 황철석이 내 손에 들어온 것이다. 물론 내 실험실에도 이것보다 더 완벽한 모습의 외국산 황철석이 무려 두 점이나 있다. 하지만 이 녀석에 비할 바는 아니다.
황철석은 겉보기 색이 금과 비슷하기 때문에 '바보금(Fools' Gold)'이라 불리는 광물이다. 다음 기사에서 황철석에 대해서도 자세히 다뤄볼 예정이다.
내 손으로 직접 파낸 최초의 광물인 황철석. 이 녀석의 이름은 Pyrite-W227P라고 하자. 내가 2월 27일 포항에서 캔 파이라이트란 뜻이다. 깨끗하게 단장해서 현미경으로 관찰하고 잘 보관해야겠다.
화석 및 광물 전문가에게 문의해봐야겠지만, 황철석 근처에서 발견된 점과 꽤 무겁고 사금같이 빛나는 표면으로 미뤄볼 때, 황철석과 절대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사금처럼 반짝이는 표면과 도토리처럼 톡 불거진 저 꼭지 부분은 황철석을 의심하게 만드는 부분이다.
실험실로 가져와서 다른 각도에서 보니 바보금에 틀림없어 보인다.
궁금한 마음에 동네 철물점의 도움을 받아서 표면을 한참 갈아보았더니 금가루같은 철가루가 줄줄 흘러내렸다.
어느 전문가에게 문의했더니 진한 염산에 담가두면 서서히 황철석의 면모가 나타날 것이라고 조언해 주었다. 실제로 염산을 구할 수가 없어서 실험실에 있던 묽은 염산에 30분간 담갔으나 큰 변화가 보이지 않았다. 위험한 화학제품이라 그런지 쉽게 사기는 힘들어 보인다. 아빠의 도움을 받아 조만간 그 정체를 밝혀내고야 말겠다. 염산에 담그면 눈녹듯 누런 황철석이 나타나는 장면을 그려본다.
시간만 허락된다면 밤새 파헤쳐 볼 생각이었다. 꽤 재밌는 광물과 화석이 나올 것 같다.
혹시라도 이곳에 탐사가시는 분들께서는 조심해서 다뤄주셨으면 좋겠다.
저 구덩이에서 조개껍데기 조각들이 많이 나왔다.
맛난 쿠키 표면에 굵은 설탕을 발라놓은 듯한 광물도 만났다.
석영이 촛농처럼 흘러내린 모습이다.
Salix sp.
목재 화석. 자작나무와 단풍나무의 목재로 의심된다.
물에 약한 이암의 성질을 이용해서 화석 전체를 그대로 정제수에 일정 시간 담궈두면 목재화석만 떨어질 것이다. 그리고나서 화석의 가장 얇은 부분을 프레파라트로 만들어 관찰하면 나이테와 도관 및 세포의 단면을 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또한 현생의 나무 박편과 비교해 보는 것도 재밌을 것 같다.
들은 바에 따르자면, 국립문화재연구소가 이곳 식물 화석지를 조만간 천연기념물로 지정하려고 노력하는 중이라고 한다.
도로 확장이라는 이름으로 이곳 신생대 마이오세 이암 퇴적층을 시멘트로 발라버린 곳이 많아서 걱정을 하던 중이었다. 이곳 포항시청의 담당자와도 통화를 했는데 아직까지는 아무런 보호 대책이 없다고 한다. 이암의 특성상 비만 와도 쉽게 부서지는데 빨리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전면적인 보호조치를 받았으면 좋겠다.
그보다 먼저 이곳 포항시청이 주도하여 이곳에서 산출된 화석을 보관 전시하는 박물관부터 생겼으면 좋겠다. 물론 내가 모은 40여 점의 화석들도 모두 기증할 것이다.
포항 신생대 화석 박물관
나뭇잎부터 물고기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에서 가장 다양한 화석이 풍부하게 산출되는 이곳 포항은 매우 소중한 곳이다. 택지 개발과 도로 건설로 이암 퇴적층이 더 훼손되기 전에 하나라도 더 발굴해야겠다. 그리고 포항시장께서는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 볼 수 있는 "포항 신생대 화석 박물관"을 만들 계획을 세웠으면 좋겠다.
윤관우 기자
글쓰기 평가현수랑 기자2016.04.27
기사 검토가 늦어져서 정말 미안해요. 마감에 홈페이지 개편에 다음 특집 기사까지 정신 없이 바빠서 그랬답니다 ;; 친구를 직접 따라가서 탐사한 듯 생생한 설명과 사진에 놀라게 되는 기사예요. 문장에서도 크게 흠잡을 부분이 없구요. 정말 멋진 기사예요 ^^
저희는 예전에 사마귀 알집을 보았는데 신기해서 집으로 가져왔습니다.
처음엔 분명히 죽을 줄 알았는데 놀랍게도 부화 했습니다. 저는 그런 것도 모르고 자고 있었습니다. 생명의 경이로움을 느꼈네요~~^^
화석 찾느라 참 힘들었을 것 같네요 수고하셨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