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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참한 역사,관동대학살
안녕하세요.
황해봄기자 입니다. 기자분들은 혹시 '관동대학살'이라는 사건을 알고 계시나요?오늘은 이 사건에 대해 이야기 해보려고해요.
관동대학살은 1923년 9월1일 일본 도쿄 근처 카나가와 현 사가미 만을 진앙지로 규모 7.9의 강진과 7.3, 7.2의 여진이 계속 발생했어요. 도쿄 인근은 많은 화재의 발생과 가옥의 붕괴 등으로 큰 혼란에 빠졌죠.일본은 노동자계급의 성장, 쌀소동, 일본공산당의 성립에 따른 계급투쟁의 격화와 활발해지는 한국·중국의 민족해방 운동에 직면하여 한국인과 사회주의자를 탄압할 기회를 엿보고 있었습니다. 이때 일어난 대지진으로 인한 사회혼란은 탄압의 좋은 기회가 되었죠. 일본 정부가 계엄령이 선포된 도쿄·가나가와 현·사이타마 현·지바 현 등지에서 한국인이 폭동을 일으켰다는 유언비어를 고의로 퍼뜨려 민족배외주의를 자극하자, 이 지시가 언론에 보도되면서 조선인들이 우물에 독을 풀어 일본인들을 학살하려 한다는 식으로 확산되었습니다. 7일에는 치안유지령을 긴급칙령으로 공포했는데, 이에 조선인에 대해 경계심과 적개심을 품은 일본인들이 자경단을 결성, 조선인들이 발음하기 어려운 일본어를 말하게 하여 이상한 발음을 내는 조선인, 중국인, 심지어 타지역에서 온 일본인들까지 학살하기 시작했다.1923년 9월1일부터 시작된 관동대학살은 3일에 거쳐 9월 4일에 끝이나게 됩니다. 일본에 경찰,군인,시민들은 일본정부가 퍼트린 유언비어 때문에 조선인,중국인들을 처치하기 위해서 서로 한뜻을 매졌고 일본 군인들과 경찰들은 총을들고 다니기 시작합니다.
일본 군인,경찰들은 일본에 애국가와 같은 '기미요가'를 부르게했으며,그것을 부르지 못한 사람들은 다 일본시민들에 억울하게 죽어버리고 말죠.당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독립신문〉 특파원이 조사·보고한 바에 따르면 6,661명이 피살된 것으로 되어 있으며, 이것이 거의 공식화된 기록으로 인정받고 있으나, 2013년 독일 외무성 자료에서 조선인 피해자가 모두 2만 3,058명인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1924년 3월 독일 외무성에서 작성한 이 자료에는 학살 장소와 시신이 확인된 경우가 8,271명, 시신만 확인된 경우가 7,861명, 장소와 시신이 미확인된 경우가 3,249명, 경찰에 학살된 경우가 577명, 일본 군인에게 학살된 경우가 3,100명이라고 분류되어 있습니다.이 관동대학살이 일어난지 50년이 지난 지금도 그 유언비어를 퍼트린 일본 정부는 우리나라에 제대로 된 사과조차 하지 않고 있습니다.최근에는 일본부총리가 한국에서 난민이들어오면 사살도 고려해 본다고 했죠.
(출처:다음블로그 가문비님)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는 말이있듯,우리에 아픈 역사를 잊으면 안 되겠죠?이상,황해봄기자였습니다.
글쓰기 평가어린이과학동아 기자2021.12.13
관동대학살에 대한 글을 써 주었네요. 예전에 TV에서 역사를 다루는 프로그램에서 본 기억이 나네요. 관동대학살을 우선 왜 소개하고 싶었는지 궁금하네요. 역사적인 사건에 대한 정보는 자세하게 자료를 통해 소개해 주었는데, 해봄 친구의 생각, 이 사건을 왜 글을 통해 소개하고 싶었는지 그 부분은 글에 별로 없는 점이 아쉬웠어요. 글의 마지막 부분에 자신의 생각을 표현해 주긴 했는데, 좀 더 이 사건을 알게 된 후 해봄 친구가 생각했던 것 글을 통해 친구들에게 전하고 싶은 것을 좀 더 표현해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