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가슴 아픈 역사를 품고 있는 진주

2016.05.07

이번에 오빠 군대 면회를 위해 진주에 갔어요. 여러 곳을 방문했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국립진주박물관과 의암에 대해 소개해드릴께요. 모두 임진왜란과 관련되어 있답니다!



 



[임진왜란의 시작]



일본과 조선은 본래 우호관계를 맺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16세기 말 조선은 일본을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대륙 정복 야심 아래 총 15만 8천명의 일본군에게 침략을 받게 되었습니다. 조선은 1592년(선조 25) 4월 14일 새벽에 상륙한 일본군의 선봉대를 맞이하여 맞써 싸웠으나, 강한 군사력과 앞선 무기들을 소유하고 있던 일본군들에게 밀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렇게 7년간의 참혹한 전쟁이 시작됩니다.



 



[명군의 참전과 공과]



일본군은 빠른 속도로 2달 만에 함경도까지 들어오게 됩니다. 하지만 조선군은 쉽게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일본군의 "길을 비켜주면 공격하지 않겠다."는 말에 "싸워 죽기는 쉬워도 길을 비켜주기는 어렵다."라고 답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조선군의 강한 정신력만으로 막강한 일본군을 물리칠 수는 없었습니다.



 



이에 조선은 명나라에게 도움을 요청합니다. 명군의 참전으로 인해 조선은 몇 가지 이점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전쟁으로 인해 점령된 국토를 단기간 내 수복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조선의 배후에는 명나라가 후원하고 있다는 점을 일본에게 확실히 인식시킬 수 있었고 전쟁기간 중의 파농과 기근으로 부족해진 식량을 지원받았습니다. 다만 명군의 지휘권 행사로 조선군은 의지대로 독자적인 전투를 벌일 수 없었습니다. 또한 명군의 일방적 강화협상 추진으로 조선은 자주적 국권을 행사할 수 없었고 명군의 접대과정에서 국왕의 권위가 심각하게 실추(하락)합니다. 마지막으로 전투지역 이외의 명군의 민간에 대한 횡포가 극심했습니다. 명군들은 자신의 자국이 아닌 곳에서 싸우기 때문에 소극적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진주성과 임진왜란]



1592년 8월에 이르자 조선군의 이순신이 이끈 수군과 의병의 활약으로 일본은 위협을 느끼게 됩니다. 이로 인해 1592년 8월 서울을 출발한 2만명의 일본군은 1592년 9월 말에 진주에 도착하게 됩니다. 진주목사 김시민은 일본군이 몰려오자 3천 8백여 명의 병력과 진주성 내의 백셩을 규합하여 결전태세를 갖추었고, 성 밖에선 경상도와 전라도의 의병이 합세하여 일본군을 견제하였습니다. 일본군은 엿새 동안 공격하였으나 결사적인 대항에 공략을 포기하고 10월 10일 퇴각함으로써 진주성을 지키는데 성공합니다. 하지만 일본은 1593년 6월 19일 다시 진주에 오게 됩니다. 진주성 안에는 김천일을 비롯한 최경희, 황신, 고종후의 지휘부와 3천 5백여 명의 병사, 6~7 만명의 백성이 있었지만 철저히 무장된 일본군과 써워 진주성을 지키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의암과 논개]



이떄 논개는 왜장을 껴안고 남강에 투신한 기생으로 현재는 의로운 기생, 의기생으로 불립니다. 논개는 진주성이 함락되자 나라의 원한을 갚기 위하여 왜장을 촉석루(촉석루는 진주의 상징으로 영남 제일의 명승으로 꼽힙니다. 이곳은 고려 고종 28년, 1241년 진주 목사 김지대가 창건한 이후 지금까지 여러 차례에 걸쳐 고쳐지고 있습니다. 이곳은 전쟁 때는 장수의 지휘소로 쓰였고, 평상시에는 선비들이 풍츄를 즐기던 명소였습니다. 촉석루는 강가에 바위가 우뚝우뚝 솟아 있다고 하는 데에서 그 이름이 유래되었습니다.) 아래 의암으로 유인한 후 함께 남강에 몸을 던져 순국하였습니다.이에 논개의 순국 정신을 기리기 위해 영남 사람들은 논개가 뛰어내린 바위를 의암이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일본 교과서 속 임진왜란]



일본 중등 사회 과정의 역사 부분 교과서는 모두 8종입니다. 이 교과서들은 대개 임진왜란을 하나의 작은 항목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교과서에는 임진왜란을 '조선 침략'이라 다루고 있으며 도요토미의 대륙 정복 야망과 조선침략의 과정, 조선 백성들의 저항, 이순신의 활약, 도자기술의 일본 유입 등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정말 우리나라의 가슴 아픈 역사에 대해 자세히 알게된 뜻깊고 인상 깊은 시간이었어요! '진주' , 정말 이름만큼 아름다운 곳이었습니다!



(출처:국립진주박물관)



       



          논개의 사진입니다^^            



       



            의암의 모습이고요^^  



     



            진주성의 모습입니다.멋지죠??^^


글쓰기 평가어린이과학동아 기자2016.05.09

오빠 면회를 갔다가 역사 공부까지 하고 훌륭합니다. 배운 내용을 다른 기자 친구들에게도 공유해줘서 고마워요. 기사를 참 잘 썼어요(혹시라도 국립진주박물관의 설명 글을 그대로 옮긴 것이라면, 다음부터는 읽고 이해해서 직접 다시 쓰도록 해요^^) 문장에서는 [여러 가지 곳들을]은 [여러 곳을]이라고만 표현해도 돼요. 나머지 내용은 아주 좋아요. 일부 수정한 부분은 밑줄 그어 표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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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3
저는 역사에 관심이 많은데 이런 내용은 처음 보네요. 감사해요~
저도 갔다 왔어요
감사합니다.진주 박물관의 설명을 저의 나름대로 바꿨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