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의 참사, 성수대교 붕괴사건

2022.12.04

안녕하세요. 김선우 기자입니다.



이번엔 대한민국 최악의 참사 성수대교 붕괴사고를 알아볼 겁니다.



 



이 참사는 10월 21일에 있었습니다.



당시 승합차엔 의경 11명이 흥얼거리면서 운전을 하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잠깐! 10월 21일은 경찰의 날입니다.



이날엔 열심히한 경찰들에게 표창장을 주죠.



그리고 성수대교를 건너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건너던게 갑자기 솟구쳐 오르더니



눈을 떠 보니까 사람들이 작게 보였죠.



 



성수대교가 붕괴된 겁니다!





 



한편 의경들이 흥얼거리면서 성수대교 쪽으로 갈 때 



선생님 4명이 르망이라는 차를 타고 성수대교 쪽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무학여고 여학생들을 많이 태운 16번 버스가 성수대교 쪽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차 한 대가 성수대교를 건너고 있었습니다.



그때 성수대교가 붕괴됩니다!



16번 버스는 하필이면 뒷바퀴가 다리에 걸렸습니다.



그때 갑자기 버스가 뒤집히더니 뒤집힌 채로 20m높이에서 떨어졌습니다!



그리고 의경11명을 태운 승합차는 괜찮았습니다.



하지만 아까 말한 차 한 대는 철근에 걸렸습니다.



이 차 한 대에 있던 사람은 조심히 조수석으로 옮길려고 하는 순간 덜컹!



하더니 물이 차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은 있는 힘껏 창문을 박살냈습니다.



그리고 결국엔 생존하였습니다.



그리고 16번 버스엔 많은 사람이 타고 있었는데



그중 2명에 기적의 생존자가 있었습니다.



이 두 사람들은 내릴 문에 있는 손잡이를 잡고 있었는데 이것이 지지대 역할을 해주었습니다.



의경들은 버스에 있던 사람들을 구조해주었지만 모든 사람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너무 추워요"



 



피를 많이 흘려 체온이 떨어진 것이죠.



그리고 아까 말한 사람들 2명 빼곤 모두 다 죽었습니다.



그리고 먼 곳에서 사람들이 소리지르는 게 들렸습니다.



보았더니 아까 르망 차에 타고 있던 사람들이 었습니다.



의경들은 비 와서 물살이 센 한강에 뛰어들었습니다.



그리고 선생님 4명중 2명을 구조했습니다.



한편 제보를 들은 경찰들은 처음엔 장난전화인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같은 제보가 속출하자 비상이 걸렸고 경찰,소방관,군인 들 모두가 출동했습니다.



30분 뒤 보트가 왔고 선생님들 차 르망을 발견 했는데 나머지 선생님 2명을 찾았지만



선생님들은 죽은 상태였습니다.



 



이 성수대교 붕괴 사고 사망자는 32명 입니다. 그중 29명이 16번 버스에 타던 사람입니다.



생존자는 총 17명입니다.



이날 서울 통화량이 올랐습니다.



 



 



<사태의 죄와 벌>



 



성수대교를 만든 시공사는 동아건설입니다.



당시 리비아의 기적 덕분에



대한민국 최고의 건설회사입니다.



당시 회장 최원석 회장은 처음엔 죄송하다고 공손했지만



검찰 조사가 들어가고 태도가 확 바뀝니다.



오히려 당당하게 화를 내는 태도죠.



그리고 최원석 회장은 관리가 소홀했다고



서울시를 탓했습니다.



서로 책임을 넘기겼습니다.



그리고 서울시 공무원과 동아건설 관계자



모두 체포했습니다.



그리고 그에 대한 형량은



집행유예였습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온 나라가 분노에 쌓여고



항소심에서 1년6개월~2년 형량이 나왔습니다.



당시에는 중형이였죠.



 



<사태의 원인>



 



성수대교 붕괴 사고는 성수대교 남쪽에서 사고가 났습니다.



정확힌 9번 다리와 10번 다리에서 사고가 났죠,



성수대교는 용접부실로 밝혀졌습니다.



원래엔 X자 모양으로 용접을 한다고 했는데



네모 모양으로 용접을 했고 용접제를 꽉 채우지도 않았습니다.



결국 이게 사태의 원인입니다.



사실 사태 전날에 제보가 있었습니다.



성수대교에 금이 갔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서울시는 어떤 대책을 세웠나면 철판을 깔아 놓았습니다.



그리고 5차선으로 확대한다는 대책을 세운적도 있습니다.



그리고 사태가 나기 1시간 전에도 제보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서울시는 애초에도 하자보수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성수대교가 만든지 15년 밖에 안 됐기 때문입니다.



원래 하자보수는 다리가 20년이 넘어야 합니다.





 



결국 잘못은 부실공사를 한 동아건설과,



서울특별시 모두 잘못이 있습니다.



 



<그 뒤...>



성수대교는 1997년에 다시 개통하였습니다.



성수대교 붕괴 사고 다음해에 무학여고 졸업식이 있었습니다.



이 때 교실뒤에 있는 남자가 있었습니다.



바로 16번 버스에 타고 있던 혜주에 아버지 였습니다.



혜주에 아버지는 졸업장을 받고 울었습니다.



그리고 성수대교에 가서 노란튤립을 한강에 던졌습니다.



그리고 혜주에 아버지는 딸을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 때문에



딸이 죽은 자리에서 생을 마감하였습니다.



그리고 성수대교 붕괴사고 생존자들은 자신이 생존자라는 걸 숨기고 지냅니다.



자신만 살아남았다는 죄책감 때문입니다.



 



여기 까지 김선우 기자였습니다.


글쓰기 평가어린이과학동아 기자2022.12.07

1994년 서울의 성수대교가 붕괴되는 사고가 있었어요. 그 사건에 대해 자세히 써 주었네요. 이번주 tv 프로그램에서 성수대교 붕괴를 다룬 게 있었는데, 아마도 그걸 보고 정리한 것 같아요. 맞나요? 사고가 어떻게 일어났고, 원인과 이후 일어난 일까지 자세히 써 주었는데요. 내용이 좀 길다는 느낌이 들어요. 사고의 원인 일어난 과정, 이후 내용은 조금 더 간추려서 정리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선우 친구가 이 사고에 대한 글을 쓴 이유, 선우 친구는 이 사고를 보면서 어떤 생각을 했는지 자신의 생각을 좀 더 표현해 보면 좋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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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5
너무 끔찍한 사건이네요. 저도 tv프로그램에서 보았는데 이 기사가 성수대교 붕괴사건과 그후의 일까지 잘 정리해주었던것 같네요 좋은기사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