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월대보름의 풍속 1.

2023.02.05

 정월대보름이란해의 첫 보름이자 보름달이 뜨는 날로 음력 1월 15일에 지내는 우리나라의 명절. 상원

한자어로는 ‘상원(上元)’이라고 한다. 상원이란 중원(中元 : 음력 7월 15일, 백중날)과 하원(下元 : 음력 10월 15일)에 대칭이 되는 말로서 이것들은 다 도교적인 명칭이다. 이날은 우리 세시풍속에서는 가장 중요한 날로 설날만큼 비중이 크다.

최상수(崔常壽)의 ≪한국의 세시풍속≫을 보면, 12개월 동안 세시풍속행사 총건수는 189건이다. 그 중 정월 한 달이 세배·설빔 등 78건으로서 전체의 거의 절반이 되어, 1년의 세시풍속 중에서 정월이 차지하는 비중이 큼을 보여준다. 그리고 정월 78건 중에서 대보름날 하루에 관계된 세시풍속 항목은 40여건으로 정월 전체의 반수를 넘고, 1년 365일에서도 이 하루의 행사가 5분의 1이 넘는 비중을 보여주고 있다.

 

거기에다가 동제(洞祭)나 줄다리기 등 뜻이 깊고 규모가 큰 행사들이 집중되어 있다. 한편, 임동권(任東權)이 쓴 ≪한국세시풍속≫은 12개월에 총 192건의 세시행사를 수록하고 있는데, 그 중 정월 한 달에 102건이 있어서 전체행사의 절반이 훨씬 넘는다. 그리고 정월 14·15일의 대보름날 관계 항목수가 55건으로 역시 정월 한달 102건의 반이 넘으며, 1년 전체의 4분의 1이 넘고 있다.

 

이러한 숫자상의 경향은 어느 세시풍속 조사에서도 마찬가지가 될 것이다. 1월 1일은 1년이 시작하는 날로서 당연히 의의를 지녀왔지만, 달의 움직임을 표준으로 삼는 음력을 사용하는 사회에서는 첫 보름달이 뜨는 대보름날이 보다 더 중요한 뜻을 가져온 듯하다.

 

우리 나라의 세시풍속에서는 보름달이 가지는 뜻이 아주 강하였다. 정월대보름이 우선 그렇고, 다음의 큰 명절이라고 할 수 있는 추석도 보름날이다. 대보름날의 뜻을 농경을 기본으로 하였던 우리 문화의 상징적인 면에서 보면, 그것은 달-여신-대지의 음성원리(陰性原理) 또는 풍요원리를 기본으로 하였던 것이라 하겠다. 세시풍속에서 그러한 예를 들면, 우선 동제가 그렇고, 줄다리기 같은 것들도 그 전형이 된다.동제신(洞祭神)도 여신이 남신의 2배를 넘는 주류를 이룬다.이렇게 첫 보름달이 뜨는 시간에 여신에게 대지의 풍요를 비는 것이 우리 동제의 주류였고 원형이었다고 할 수 있다. 경상남도 영산의 줄다리기에서는 대낮에 그러한 짓을 하는 자는 없고 해가 져야 이루어진다고 하여, 마치 이것을 성행위처럼 여기는 것이 지방 노인들의 관념이었다.대보름의 뜻, 그것은 한마디로 말하여서 풍요의 원점이 된다.실제 농경을 위해서는 음력이 한 달씩이나 자연계절에 차이가 생길 수 있기 때문에 보다 계절이 정확한 태양력적 요소인 24절기를 쓰기도 하였다.또한, 이날 행하여지는 농점(農點)으로서는 달집태우기·사발재점·그림자점·달불이·집불이·소밥주기·닭울음점 등이 있다.한반도 북부에서는 단오가 큰 명절이기도 하였으나, 중부 이남에서는 7월 보름인 백중보다도 비중이 작았다. 중부 이남에서는 단오를 그렇게 큰 명절로는 여기지 않았다.

 

씨름판이나 그네, 또는 백중 장(場) 같은 세시풍속 행사들이 단오보다는 7월 보름에 성하였다. 그것은 단오 때는 1년 농사 중 제일 큰일의 하나인 모내기가 아직 끝나지 않은 바쁜 때이고, 백중 때는 김매기도 다 끝나고 가을 추수만을 남긴 한가한 시기라는 농사관계와도 밀접한 관련성을 가지는 결과이다.

 

이렇듯 달을 표준으로 하는 상원이나 추석은 중국에서도 물론 고대 이래의 중요한 명절이었다. 그러나 당송대(唐宋代) 이래의 기록에 의하면 중국에서의 추석은 한식·단오·중구(重九 : 9월 9일)보다 규모가 훨씬 작았던 명절이었음을 알 수 있다. 우리 나라에서는 신라의 가위[嘉俳] 기록 이래로 중국과는 달리 보름달의 비중이 훨씬 컸던 것을 짐작할 수가 있다.

 

대보름날의 뜻을 농경을 기본으로 하였던 우리 문화의 상징적인 면에서 보면, 그것은 달-여신-대지의 음성원리(陰性原理) 또는 풍요원리를 기본으로 하였던 것이라 하겠다. 태양이 양(陽)이며 남성으로 인격화되는 데 대해서 달은 음(陰)이며 여성으로 인격화된다. 그래서 달의 상징구조는 여성·출산력·물·식물들과 연결된다. 그리고 여신은 대지와 결합되며, 만물을 낳는 지모신(地母神)으로서의 출산력을 가진다.

 

세시풍속에서 그러한 예를 들면, 우선 동제가 그렇고, 줄다리기 같은 것들도 그 전형이 된다. 동제를 지내는 시일은 약 6,000동의 서면조사 통계로는 정초가 30%, 대보름이 40%, 10월 기타가 30%로서 대보름날이 차지하는 비율이 주류를 이룬다. 그 시간도 대개 자정으로서 1년 열두 달의 첫 보름달이 충천하는 상징적인 시간이 된다. 동제신(洞祭神)도 여신이 남신의 2배를 넘는 주류를 이룬다.

 

이렇게 첫 보름달이 뜨는 시간에 여신에게 대지의 풍요를 비는 것이 우리 동제의 주류였고 원형이었다고 할 수 있다. 줄다리기도 대부분이 대보름날 행사였다. 즉, 첫 보름달이 뜨는 밤에 행하는 것이 원칙이다. 경상남도 영산의 줄다리기에서는 대낮에 그러한 짓을 하는 자는 없고 해가 져야 이루어진다고 하여, 마치 이것을 성행위처럼 여기는 것이 지방 노인들의 관념이었다.

 

특히, 암줄(서부, 여자편)과 수줄(동부, 남자편)의 고리를 거는 일을 그렇게 여기는데, 여기에서 암줄편인 여성편이 이겨야 대지에 풍년이 든다는 관념, 그것을 성행위로 여긴다는 관념들은 특히 민간신앙에서는 중요한 요소이다. 그리고 대보름날의 뜻은 이와 같은 행사들의 요점에서 특히 잘 집약된다. 대보름의 뜻, 그것은 한마디로 말하여서 풍요의 원점이 된다.

 

이러한 대보름날을 설날처럼 여기는 태곳적 관습의 전승은 지금까지도 적지 않게 남아 있다. 150여 년 전의 ≪동국세시기≫에도 “이날 온 집안에 등잔불을 켜놓고 밤을 새운다. 마치 섣달그믐날 밤 수세(守歲)하는 예와 같다.”고 되어 있다. 현대의 각 지방 민속조사보고서들에도 이러한 관습들은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전라남도에서는 열나흗날 저녁부터 보름날이 밝아야 운수가 좋다고 하여 집안이 환해지도록 불을 켜놓으려고 하며, 배를 가진 사람은 배에도 불을 켜놓는다. 경기도에서도 열나흗날 밤 제야(除夜)와 같이 밤을 새우는 풍속이 있고, 잠을 자면 눈썹이 센다고 해서 잠 안자기 내기를 하는 곳이 있다. 충청북도에서도 열나흗날 밤 ‘보름새기’를 하는 곳이 여러 곳 있다.

 

요컨대, 대보름날의 모든 관습들은 달을 표준으로 하던 신년이라는 고대생활의 유습이 계속 강하게 전승되어왔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이웃 나라들과 비교해보면 상원은 중국에서도 한나라 때부터 8대축일(八大祝日)의 하나로 중요하게 여겼던 명절이었다.

 

그러나 특히 일본에서는 대보름을 ‘소정월(小正月’)이라 부르고 있고, 지금은 양력화하고 있으면서도 이날을 국가공휴일로 지정하고 있다. 일부의 북유럽나라들의 민속에서는 1월 14일을 1년의 마지막 날이라는 사투리로 부르고 있는데, 이는 대보름날을 신년 제1일로 삼았던 오랜 역법의 잔존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 세시풍속에서 달이 차지하는 비중은 태양의 비중이 문제되지 않을 만큼 강하고 큰 것이었다. 실제 농경을 위해서는 음력이 한 달씩이나 자연계절에 차이가 생길 수 있기 때문에 보다 계절이 정확한 태양력적 요소인 24절기를 쓰기도 하였다. 그러나 일반 세시풍속에서는 여전히 달의 비중이 결정적이었고, 대보름은 바로 그 대표요 상징적인 날로 여겨져왔던 것이다.

 

한편, 대보름날에는 절식으로서 약밥·오곡밥, 묵은 나물과 복쌈·부럼·귀밝이술 등을 먹으며, 기풍·기복행사로서 볏가릿대[禾竿]세우기·복토(福土)훔치기·용알뜨기·다리밟기·나무시집보내기·백가반(百家飯)먹기·나무아홉짐하기·곡식안내기 등을 행한다. 또한, 이날 행하여지는 농점(農點)으로서는 달집태우기·사발재점·그림자점·달불이·집불이·소밥주기·닭울음점 등이 있다.

 

이날 행해지는 제의와 놀이로서는 지신밟기·별신굿·안택고사·용궁맞이·기세배(旗歲拜)·쥐불놀이·사자놀이·관원놀음·들놀음과 오광대탈놀음 등이 있다. 그리고 이날에는 고싸움·나무쇠싸움 등의 각종 편싸움이 행하여지고, 제웅치기·나무조롱달기·더위팔기·개보름쇠기·모기불놓기·방실놀이·뱀치기 등의 액막이와 구충행사(驅蟲行事)도 행하여진다

 

 

정월대보름엔 귀신을 쫓는 의미로 여러가지를 한다.그중 하나는 부럼이다.

부럼이란 정월 대보름날 이른 아침에 한 해 동안의 각종 부스럼을 예방하고 이[齒]를 튼튼하게 하려는 뜻으로 날밤·호두·은행·잣 등 견과류를 어금니로 깨무는 풍속이다. 다른 말로 ‘부스럼(또는 부럼)깨물기’라고도 하고 ‘부럼먹는다’고도 한다. 또한 그러한 견과류를 일반적으로 ‘부럼’ 또는 ‘부름’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부럼의 한자 표기는 다양하다. 『경도잡지(京都雜志)』,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 『도애시집(陶厓詩集)』 중 ‘도하세시기속시(都下歲時紀俗詩)’에 작절(嚼癤)·고치지방(固齒之方)과 같은 용어가 보이고, 『담정유고(藫庭遺藁)』에는 이와 비슷한 뜻의 ‘양뇌아(養牢牙)’라는 말이 있으며, 『세시풍요(歲時風謠)』에서는 ‘작옹(嚼癰)’이라는 말로 쓰이고 있다. 그런가 하면 종과(腫果)·소종과(消腫果)라고 부르기도 했고, 『열양세시기(洌陽歲時記)』에는 교창과(咬瘡果)라고 표기하기도 했다.부럼의 정확한 유래는 알기 어렵다. 다만 조선 후기에 나온 여러 세시기류나 죽지사류 기록에 그 사례가 확인되고 있어 우리나라에서 오랜 기간 동안 광범위하게 전승되어온 민속임을 짐작할 수 있다. 또한 『해동죽지(海東竹枝)』의 기록에 의하면 “옛 풍속에 정월 대보름날 호두와 잣을 깨물어 부스럼이나 종기를 예방하였다. 궁중에서는 임금의 외척들에게 나누어 주었고, 일반 시정에서는 밤에 불을 켜 놓고서 그것을 팔았는데 집집마다 사 가느라 크게 유행하였다.”고 하여 전래적으로 부럼깨기가 일반 백성들 사이에서는 물론 궁중에서까지도 성행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부럼깨기는 부스럼을 깨물어 그것을 예방한다는 목적으로 행해지기 전에, 본디 이를 튼튼하게 한다는 주술적 목적에서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동국세시기』에는 “의주(義州) 풍속에 젊은 남녀들이 새벽에 엿을 깨무는 것을 치교(齒交)라고 한다.”는 기록이 있다. 여기에서 치교는 ‘이 내기’로써 누구 이가 튼튼한지를 겨룬다는 뜻이다. 이러한 겨루기는 일반적으로 대보름날 고기산적[肉炙]을 만들어 먹는 것을 ‘이 굳히기 산적[固齒炙]’이라고 부르는 것과도 유사한 행위라고 할 수 있다. 『담정유고』에 보이는 “호두와 밤이 어금니를 단단하게 하니, 오이처럼 부드럽게 부스럼을 깨무네.”라는 시구도 이런 관념이 오래 전부터 널리 인정되어 왔음을 말해준다.

 

부럼깨기에는 날밤·호두·은행·잣·땅콩 등 껍질이 딱딱한 것을 이용하며, 때로는 그보다 부드러운 무를 대용하기도 한다. 부럼깨기에 이용되는 견과류의 종류로는 어느 한 가지를 쓰기도 하지만, 대개는 여러 가지를 함께 골고루 마련하여 가족 구성원의 능력과 취향에 따라 선택적으로 이용한다. 이러한 견과류를 집집마다 보름 전날 미리 물에 씻어 준비해 두었다가 보름날 아침에 식구 각자가 이것을 어금니로 힘주어 단번에 깨물면서 “부럼 깨물자!” 혹은 “올 한 해 무사태평하고 부스럼 안 나게 해줍소사.” 하는 주언(呪言)이나 축원사를 함께 외운다. 부럼깨기는 자기 나이 수대로 하기도 하지만 두세 번 거듭하는 정도로 그치는 경우가 많다. 대개 첫 번째 깨문 것은 주언과 함께 마당이나 지붕에 던지고 두 번째 것부터는 버리지 않고 껍질을 깬 뒤 먹는다.

 

 

부럼깨기 풍속은 중국과 일본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중국의 『형초세시기(荊楚歲時記)』에 설날에 “도소주와 교아당(膠牙餳)을 올린다.”는 기록이 있는데, 여기에서 교아당은 엿기름으로 만든 엿을 말하며 정초에 이것을 올린다는 것은 곧 엿을 깨물어 이의 강함을 겨루는 우리나라의 의주 세시풍속과 같은 것이다. 한편 일본에서 정초에 ‘齒固め(하가타메)’라는 ‘이 강하게 하기’ 관행이 조정과 재야를 통하여 두루 행해졌던 것도 우리의 경우와 유사한 민속이라 할 수있다.

부럼깨기는 본디 견과류를 깨무는 것으로, 이를 강하게 할 수 있다는 인류 공통의 주술적 사고에서 출발하였다. 그러다가 종기를 동반한 피부병이나 전염병의 현실적 위험이 크게 의식되면서 부럼깨기라는 말로 변하고, 정초 세시풍속으로서의 특징에 따라 한 해의 안녕을 기원하는 뜻이 더해져 주술성과 축원성을 띠는 한국적 세시풍속으로 정착되었다고 할 수 있다.

다음으로는 정월 대보름날 아침 해뜨기 전에 만난 사람에게 “내 더위” 하며 더위를 파는 풍속. 출처:도로시와 마법사

 

더위팔기는 전국적으로 행해지는 대보름날 아침의 속신으로 보통 해뜨기 전에 하는 것이 상례이다. 그러나 강원도 지역에서는 주로 정월 열나흗날 아침에 하며, 전라도 일부 지역에서는 2월 초하루에 더위팔기를 하는 곳도 있다. 그리고 제주도에는 없는 풍속으로 알려져 있다. 해가 뜬 뒤에는 효험이 없다고 한다. 아침에 만난 사람의 이름을 부르거나 적당한 호칭을 하여 대답하는 사람이 있으면, “내더위” 하고 소리친다. 이렇게 함으로써 대답한 사람에게 그해 여름의 더위를 팔아넘기고 대신에 자신은 더위를 타지 않는다고 믿는다. 지역에 따라서는 자기 나이만큼 더위를 팔아야 더위를 타지 않는다는 곳도 있다.

한편 이름을 불린 사람이 미리 알아채고 대답 대신에 더위를 사지 않겠다는 뜻으로 “내더위 맞더위.” 하고 소리친다. 그러면 오히려 더위를 팔려는 사람이 되사는 것으로 여긴다. 더위를 되파는 말은 지역에 따라 다르다. 예를 들면 “니 한압씨 철부덕”, “니 도우 내 도우 맞도우”, “니 하내비 길에 더우”, “니 하내비 짬더우”, “니 더우 내 더우 니 하나씨 콧더우”, “먼저 더위” 등이 그것이다. 더위를 산 사람은 반드시 다른 사람에게 더위를 팔아야 그해 더위를 타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더 적극적으로 더위를 팔려고 한다.

더위팔기는 가족이나 어른들에게는 일반적으로 하지 않으며, 친구들 사이에서 주로 이루어진다. 대보름날 친구들끼리 만나면 더위를 몇 개 팔았다고 자랑하기도 하며, 때로는 더위를 사고파는 과정에서 말다툼으로 이어지는 일도 있다고 한다. 요즈음은 전화를 걸어서 더위를 파는 사람도 있다.

 

경상도 지역에서는 더위막기라 해서 대보름날 이른 아침에 마당에 짚불을 피워 놓고 기원을 하면 그해에 더위를 먹지 않는다고 한다. 또 보름날 아침밥을 먹고 나서 집에서 부모들이 아이의 더위를 팔아주기도 하는데, 어머니들이 아이를 앉혀놓고 물을 퍼다가 아이 얼굴 한 번 씻기고 손으로 사방에 물을 뿌리면서 “더위도 오지 말고 액운도 따라 오지 말라.”고 하면서 빈다. 또 보름날 아침에 찬물을 먹으면 더위를 먹는다 해서 찬물을 마시지 못하게 하는 지역도 있다. 강원도 지역에서는 소에게 왼새끼를 꼬아 목에다 걸어주고 더위를 잘 이겨내라고 말해서 그해 여름에 소가 더위에 잘 견뎌주기를 기원한다.

 

대보름에 이루어지는 더위팔기는 소위 언령주술(言靈呪術)을 근간으로 한 예방적 속신 행위로서, 개인적인 건강을 목적으로 행해진다. 유사한 속신 행위지만, 모기팔기가 마을 단위로 이루어지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특히 여름 뙤약볕 밑에서 많은 농사일을 해야 하며 또한 날씨 때문에 탈진하기 쉬운 사람들에게 더위는 크게 염려되는 것이다. 민속적으로 우리나라에 여름철 더위를 이겨내는 다양한 피서(避暑) 방법들이 비교적 발달해 있는 것도 더위에 대한 염려에서 비롯된 것이다. 더위팔기는 피서와 다른 측면에서 주술적 지지를 받는 일종의 방서(防暑)라고 할 수 있는데, 방식은 다르지만 주술적 힘을 빌려 여름을 이겨내는 속신들이 발견되기도 한다.

세번째로는 오곡밥이다. 출처:아띠

오곡밥이란 다섯 가지 곡식으로 지은 밥

 

대보름 절식(節食)의 하나이다. 오곡은 곡식의 총칭이라고 할 수 있고 또 쌀·보리·조·콩·기장 등의 다섯 가지 곡식을 이르기도 한다. 오곡밥을 찰곡식만 가지고 지으려면 찹쌀·차수수·차좁쌀·붉은팥·검정콩 등의 다섯 가지 곡식을 시루에 쪄낸다.

 

솥에 지으려면 멥쌀 분량을 찹쌀·차수수·차좁쌀을 합한 분량만큼 섞어서 짓는다. 곡식은 섞어서 씻지 않고 모두 각각 씻는다. 멥쌀과 찹쌀은 각각 불려놓고 붉은팥은 터지지 않을 정도로 삶는다.

 

무쇠솥에 지을 때는 우선 콩을 깔고 그 위에 멥쌀을 반만 놓고 그 위에 팥·차수수를 절반 정도 놓고 다시 멥쌀·팥·차수수·찹쌀을 안친다. 밥물은 찰진 것이 많으므로 자작하게 붓는다.

 

밥이 끓기 시작하면 차차 중불로 줄이고 좁쌀 씻은 것을 위에 얹어 뜸을 오래 들인다. 찰곡식은 콩·팥 등을 섞어 짓는 것이 더 잘 지어지고 맛도 좋아진다. 많은 양일 경우에는 시루에 찌는 것이 눋지 않아서 더 좋다.

 

시루에 찔 때에는 곡식을 모두 물에 불리고 팥도 한번 삶아서 사용해야 한다. 찌는 동안에도 가끔씩 찬물을 뿌려야 잘 쪄진다. 시루에 찔 때에는 멥쌀은 넣지 않는다. 콩·팥을 넣을 경우에는 소금을 조금 넣는 것이 더 맛이 좋다.

 

오곡밥은 정월 대보름 전날 저녁에 미리 지어서 아홉 가지 나물과 함께 보름 명절의 음식으로 삼아왔다. 오곡밥에는 그 해의 곡식이 잘 되기를 바라는 뜻이 담겼다. 농사를 짓는 사람은 농사지은 곡식을 종류별로 모두 넣어서 오곡밥을 지었다.

 

특히 대보름날에는 다른 성을 가진 세 집 이상의 밥을 먹어야 그 해의 운이 좋다고 하여 여러 집의 오곡밥을 서로 나누어 먹었다. 또 그 날 하룻 동안 아홉 번 먹어야 좋다고 하여 틈틈이 여러 번 나누어서 조금씩 먹기도 하였다. 

다음기사에선 대보름음식의 효능,귀밝이술,널뛰기,낮에 연날리기로 찾아오겠습니다. 지금까지 정현지기자였습니다.감사합니다.

 

 

 

 

 

 

 

 

 

 

 

글쓰기 평가어린이과학동아 기자2023.02.06

2월 5일 오늘이 정월대보름이었어요. ^^ 정월대보름에 대해 많이 조사하고 글을 써 주었네요. 그런데 오늘 글을 쓰기 위해 참고한 자료의 문장을 완전히 수정하지 않고 사용한 부분이 많았어요. 자료를 참고해서 글을 쓸 때는 반드시 모든 문장을 완전히 수정해서 자신의 문장으로 써야 해요. 아쉽지만 이 글은 현지 친구의 글이라고 보긴 어렵기 때문에 보류할게요. 다음에 글을 쓸 때는 이 점을 꼭 기억해서 자료를 참고할 때는 반드시 모든 문장을 자신이 직접 써야 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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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7



정월대보름이 지나서 2는 안 쓰기로 했습니다.



유익한 기사였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