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를 위해 총을 든 사람,안중근에 대해 알아볼께요.

2023.02.14

안녕하세요 정은주 기자입니다.



혹시 2월14일이 무슨 날인지 아시나요?



발렌타인 데이? 발렌타인데이가 맞습니다.



근데 아주 중요한 사건이 2월14일에 일어났습니다. 아시는 분도 계시겠지만 2월14일은 안중근 의사의 사형선고일 입니다. 저도 이런 중요한 일을 올해에서야 처음 알게됬는데요.



저는 최근에  안중근 의사의 삶 이런 것을 뮤지컬로 만든 뮤지컬 [영웅]을 보기도 했고 2월14일이 안중근 의사의 사형선고일이어서 이 기사를 쓰게 되었습니다.



 출처:네이버 지식백과



먼저 안중군의사의 출생부터 사망까지의 일생을 알아볼께요.



안중근 의사는 본관은 순흥(順興)이며, 황해도 해주(海州)에서 태어났습니다. 가슴과 배에 7개의 점이 있어 북두칠성의 기운에 응하여 태어났다는 뜻으로 아명(兒名)을 응칠(應七)이라 지었으며, 자라서는 자(字)로 사용하였습니다. 아버지는 진사를 지낸 안태훈이며 할아버지는 안인수로 진해현감을 지냈습니다. 할아버지가 미곡상을 하여 집안은 부유하였습니다. 안중근은 어려서부터 한학(漢學)을 배웠으나 성장하면서 무술에 더 열중하였습니다.



 



청년기에는 말타기와 사냥에 능했으며 포수들 사이에서도 명사수로 알려졌습니다. 동학운동이 일어나자 아버지 안태훈이 사병을 조직하여 동학농민군을 진압하는데 가담하였으며, 1895년 아버지를 따라 가톨릭교에 입교하여 신식 학문을 접하고 가톨릭 신부에게 프랑스어를 배웠으며, 도마[Thomas, 多默]라는 세례명을 얻었습니다.



 



안중근 의사의병활동에 대해 관련해서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1904년 홀로 평양에 나와 석탄상을 경영하고 이듬해 을사늑약(乙巳勒約)이 체결되는 것을 보자 상점을 팔아 1906년 그 돈으로 삼흥학교[三興學校;후에 오학교(五學校)로 개칭]를 세우고, 이어 남포(南浦)의 돈의학교(敦義學校)를 인수하여 인재양성에 힘썼습니다. 그러나 국운(國運)이 극도로 기울자 합법적인 방법으로는 나라를 바로세울 수 없다고 판단하여, 1907년 연해주(沿海州)로 가서 의병운동에 참가하였습니다. 이듬해 전제덕(全齊德)의 휘하에서 대한의군참모중장(大韓義軍參謀中將) 겸 특파독립대장(特派獨立大將) 및 아령지구(俄領地區) 사령관의 자격으로 엄인섭(嚴仁燮)과 함께 100여 명의 부하를 이끌고 두만강을 건너 국내로 침투, 일군(日軍)과 격전을 벌였으나 중과부적으로 패퇴하였습니다. 이후 노에프스키[烟秋]에서 망명투사들이 발간하는 《대동공보(大同公報)》의 탐방원(探訪員)으로 활약하는 한편 동료들에게 충군애국(忠君愛國) 사상을 고취하는 데 진력하였습니다.



 



그 다음엔 동의단지회에 대해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1909년 동지 11명과 죽음으로써 구국투쟁을 벌일 것을 손가락을 끊어 맹세하고 동의단지회(同義斷指會)를 결성하였습니다. 그해 10월 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가 러시아 재무상(財務相) 코코프체프와 회담하기 위하여 만주 하얼빈에 온다는 소식을 듣고 그를 처단하기로 결심하였다. 동지 우덕순(禹德淳)과 함께 거사하기로 뜻을 같이하고 동지 조도선(曺道先)과 통역 유동하(劉東河)와 함께 이강(李岡)의 후원을 받아 행동에 나섰습니다.



 



그 다음엔 안중근 하면 딱 생각나는 이토 히로부미 저격 관련 안중근의사의 업적에 대해 설명해 드리갰습니다.



 



1909년 10월 26일 일본인으로 가장, 하얼빈 역에 잠입하여 역 플랫폼에서 러시아군의 군례를 받는 이토를 사살하고 하얼빈 총영사 가와카미 도시히코[川上俊彦], 궁내대신 비서관 모리 타이지로[森泰二郞], 만철 이사(滿鐵理事) 다나카 세이타로[田中淸太郞] 등에게 중상을 입히고 현장에서 러시아 경찰에게 체포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순국에 대해 설명 해 드리겠습니다.



일본 관헌에게 넘겨져 중국 뤼순[旅順]에 위치한 뤼순형무소에 수감되었고 이듬해 2월 14일, 재판에서 사형이 선고되었으며, 3월 26일 형이 집행되었습니다. 옥중에서 《동양평화론(東洋平和論)》을 집필하였으며, 서예에도 뛰어나 옥중에서 휘호한 많은 유묵(遺墨)이 보물로 지정되었습니다.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되었고, 1970년 서울특별시 중구 남대문로 5가 471번지에 기념관이 건립되었습니다.



 



현재까지는 안중근 의사의 시신을 밝혀지지는 않았으나 일본이 어디에 시신을 묻었는지 알려주지 않았다고 합니다.



 



 2월14일을 발렌타인 데이로도 기억하고 안중근 의사의 사형선고일로도 기억하면 어떨까요?



 



안중근의사는 한마디로 평화를 위해 총을 든 사람 이러고 할 수있겠는데요.



우리의 위인인 안중근 의사를 꼭 기억하시면 좋겠습니다. 



이상 안중근의사를 꼭 기억하시면 좋겠는 정은주 기자였습니다. 감사합니다.



 


글쓰기 평가어린이과학동아 기자2023.02.15

좋아하는 사람에게 초콜릿을 주는 발렌타인 데이에 안중근 의사의 사형선고일이었다니 마음이 무거워지네요. ㅠㅠ 오늘 은주 친구를 통해 2월에 안중근 의사를 기억하게 될 것 같아요. 안중근 의사에 대한 많은 자료 조사를 하고 글을 완성해 주었네요. 그런데 참고한 자료의 문장을 완전히 수정하지 않고 쓴 부분이 꽤 있었어요. 자료를 참고해서 글을 쓸 때는 문장을 완전히 수정해서 자신이 쓴 문장이어야 한다는 점을 꼭 기억해 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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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7

안중근 의사가 살아있을때를 잘 설명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슬프지만 안중근 의사의 정신과 삶을 기억해야겠어요

처음 알았네요!

태권도장에서 매년 알려줘서 알고있었지만

기사보고 더 알게 되었어요


즐거운 발렌타인 데이가 안중근 의사의 사형선고일이라니.....ㅠ

슬프기도 하고 충격이기도 하네요ㅠㅠ

2월 14일이 안중근 의사의 사형선고일이라는  것을 처음 알았습니다.

앞으로는 2월 14일이 안중근 의사의 사형선고일로 기억되었으면 좋겠습니다.



2.14일이 안중근의사의 사형 선고일이라는 것, 저도 최근에야 알았네요..

정은주 기자의  이 기사를 보고 많은 분들이 기억했으면 합니다

2.14일은 즐거운 발렌타인 데이도 맞지만,

잊어서는 안될 안중근의사의 사형 선고일이라는것을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