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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챌린지]우장춘 박사님을 소개합니다!
안녕하세요 김주아 기자입니다. 오늘은 유전학의 아버지,우장춘 박사님에 대해 써보려고 합니다.(이 내용은 어과동에 아주 재밌는 만화로 나옵니다.[06.01일자 부터])먼저 저도 만화를 읽고 나서 여러 종끼리 교배하면 우리가 알고 있는 종이 나오는 게 신기했어요.그럼 바로 시작합니다!
먼저 우 박사님은 아버지는 한국인,어머니는 일본인이었어요.그래서 일본 아이들에게 놀림을 많이 받았지요.하지만 공부는 잘해서 도쿄제국대학 농학실과를 졸업하고,육종학 연구에 매달렸어요. 이렇게 연구한 끝에 1936년에 발표한 논문<종의 합성>은 유전학 역사에 한 획을 그은 걸로 유명하다고 합니다.예를 들어,배추와 양배추를 교배하면 유채가 나온다는 것처럼 말이죠.우 박사님의 논문은 전 세계를 주목했습니다.왜냐면 그 당시에는 제국주의로 적자생존 논리가 유력했기 때문입니다.그리고 어릴 적 어머니의 도움도 있었습니다.하지만 어려움도 있었습니다.왜냐면 박사님은 논문마다 한국 성씨를 썼기 때문에 일본 학자들이 비판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그렇게 연구를 계속하던 박사님은 1950년,한국의 연락을 받습니다.
한국에서 한국농업과학연구소를 맡아주라고 했습니다. 해방 이후 많은 국민들이 가난과 굶주림에 시달리다가 다른 나라로 이민을 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우 박사님은 한국으로 가는 길을 택했습니다.그리고 같은 해 3월,우 박사님은 혼자 우리나라에 도착했습니다.박사님이 제일 먼저 개발한 것은 배추,무의 새로운 품종이었어요.다음은 씨감자였어요.왜냐면 씨감자가 모두 바이러스에 감염됐었기 때문이었어요.
이외 우 박사님은 제주도에서 감귤을,주한미군에게는 수경재배를,1958년에는 벼 연구를 하셨습니다. 하지만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일본으로 갈려고 했지만 국교가 단절되어 갈 수가 없었어요.이 소식을 들은 제자들이 어머니의 빈소를 우리나라에 차렸고,국민들이 많은 조의금을 보냈어요.
당시 연구소에는 수도가 없었기 때문에 조의금으로 우물을 팠습니다. 그런데 큰 바위가 막고 있었어요.그때, 기적 같이 바위가 깨지면서 맑은 물이 쏟아져 나왔어요.우리나라 농업에 대한 박사님의 열정은 끝이 없었어요.박사님은 벼 연구를 하셨어요.하지만 박사님은 벼 연구를 마치지 못했습니다.우리 정부는 박사님에게 문화포장을 수여했습니다. 그리고 3일 후인 1959년 8월 10일,박사님은 끝내 눈을 감으셨습니다. 하지만 박사님은 많은 것을 남기셨습니다.
그럼 이번에는 연도표로 볼까요?
1898-일본 도쿄 출생
1919- 일본 도쿄제국대학 농실학과 졸업
1936-일본 도쿄제국대학 농학 박사
1950-한국농업과학연구소 소장
1953-중앙원예기술원장
1959-문화포장
1959-영면
오늘 기사는 여기서 마치겠습니다.다음에 또만나요!
내용출처:어린이과학동아 2023.06.01자~15자 과학기술자의 피땀눈물 대한민국을 빛내다 3화~4화
글쓰기 평가어린이과학동아 기자2023.07.08
우장춘 박사님 소개 글 잘 봤어요. 이름은 많이 들어봤지만, 우장춘 박사님의 어머니가 일본분이셨고, 그 시대에 한국인과 일본인 두 국적 다른 부모 밑에 자라 어려움이 있으셨겠다는 걸 요즘 친구들의 글을 통해 알게 되었어요. 오늘 주아 친구의 글을 통해서 우장춘 박사님에 대해 몰랐던 많은 걸 알 수 있었어요.
훌륭합니다. 주아기자님. 박사님이 남긴것들이 생활에는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소개해주면 더 좋겠어요.
주아기자님 어과동에서 우장춘 박사님 만화를 재미있게 읽었군요!
우장춘 박사님의 성장과정과 업적을 잘 요약해서 정리해 주었어요.
우장춘 박사님의 업적을 보고 배운점이나 느낀점도 남겨주면 좋을 것 같아요^^
오!엄청 자세하게 써 주셨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