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순 박사님

2023.07.15

안녕하세요? 배유진 기자입니다.



오늘은 김삼순 박사님의 업적을 알려드리겠습니다.



1909년, 전남 담양에서 셋째딸로 태어났습니다.



조금 더 커서는 아버지의 노력으로 창평 보통 학교에 여자부가 처음으로 개설되고 그곳에 10살에 입학했습니다.하지만 아버지는 상급 학교로 진학하는 것은 반대했습니다.



이 때 오빠가 아버지를 설득하여 경성으로 갈 수 있었습니다.



김삼순 박사님은 기차를 이용했습니다.



여러 과학문물로 인해서 여자이지만 공부를 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경성여고보 교사 손정규의 격려 덕분에 1928년 교토여자고등사범학교 진학에 도전했습니다.



정규생은 아닐지라도 19세에 청강생으로 이과에 합격했습니다.



염두에 두고 있었던 과학을 공부하기 위해서 였습니다.



성적이 우수하여 졸업을 할 때 4년 수료의 선과생 자격을 얻었습니다.



교원 의무 복무기한 2년을 채우기 위해 교사 생활을 했습니다.



시간이 흐르고 흘러서 김삼순 박사님의 교사 생활은 어느덧 6년째로 접어들고 있습니다.



하지만 박사님의 과학에 대한 열정은 아직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박사님은 학교에 몸이 아프다는 핑계로 사직서를 제출했습니다.



박사님은 일본으로 가서 도쿄 여고사 연구과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김삼순 박사님은 히로시마문리과 대학에 지원했지만, 아쉽게도 불합격하고 말았습니다.



박사님은 과학을 연구하고 대학 진학에 요구되는 영어도 공부했습니다.



1041년 입학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 훗카이도 제국대학 식물학과 보결시험에 지원하여 합격했습니다.



그리고 2편의 논믄을 쓰고 졸업했습니다.



훗카이도 제국대학 농학부 대학원 응용군 학강좌에 진학했습니다.



하지만 일본의 전쟁이 확대되자 조선으로 돌아가게 됐습니다.



스승인 박정규의 요청으로 경성여자사범학교의 교원이 되고 이 학교가 1946년 국대안으로 서울대학교의 사범 대학이 되자 그곳의 교수로 발령받았습니다.



하지만 박사님의 머릿속에서는 더 연구를 해서 박사학위를 취득하겠다는 열정이 있었습니다.



일본 유학의 기회가 생기자 1948년 교수직을 그만두었는데 얼마안가서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일본에서 박사님은 박사 학위를 받을 목적으로 기초적인 과학 연구에 매달렸습니다.



이렇게 1966년, 박사님은 여선 농축 박사가 되었습니다.



박사님은 한국으로 돌아와서 특출난 성과에도 불구하고 박사님이 있었던 서울대에 자리잡았습니다.



여선교육에 뜻을 품고 서울여대 식품영양학과 교수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느타리버섯의 인공재배에 첫 성공을 거두엇습니다.



마지막으로 2001년, 김삼순 박사님은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이상 배유진 기자였습니다.



 



 



출처:이종하등산기



 



 


글쓰기 평가어린이과학동아 기자2023.07.16

지금은 여성도 남성과 다름 없이 똑같은 교육의 기회를 가지고 있지만, 불과 100년 전만 해도 여성이 고등 교육을 받는 건 정말 어렵고 흔한 일이 아니었지요. 김삼순 박사님이 그 당시 여성 과학자로서 많은 업적을 이루신 점이 우선 놀라워요. 여러 가지 훌륭한 업적을 이루셨지만, 가장 궁금한 건 과학자로서 어떤 일을 하셨는지, 어떤 일에 관심을 가지셨는지가 궁금해요. 글의 마지막 부분에 보니 느타리버섯의 인공재배를 성공하셨다고 했는데요. 이런 내용을 좀 더 자세하게 소개해 주었다면 좋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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