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리역 폭발사고 이야기

2024.01.02

안녕하세요?



김선우 기자 입니다.



오늘 기사는 이리역 폭발사고입니다.



재밌게 봐주시길 바랍니다.



 



1.개요



이리역 폭발 사고는 1977년 11월 11일 전북 이리시(현 익산시) 이리역(현 익산역)에서 발생한 대형 폭발사고 입니다.



이 사건으로 총 59명이 사망하고, 1343명이 부상을 입었으며,이재민 1647세대 7800명이 발생하였습니다.



당시 사건 현장입니다.



 



2.사건의 원인



당시 인천을 출발해 광주로 가던 한국화약의 화물 열차가 정식 책임자도 없이 다이너마이트와 전기 뇌관 등,



고성능 폭발물 40톤을 싣고 이리역에서 정차하던 중에 폭발 사고를 냈습니다.



수사당국에 발표에 따르면, "호송원이 어둠을 밝히기 위해 밤에 열차 안에 켜 놓은 촛불이,



다이너마이트 상자에 옮겨 붙은게 원인"이라고 하였습니다.



이게 큰 사고로 발전하기 까지 과정을 살펴보면 인재였습니다.



"원래 이런 사고를 막기 위해 폭약과 뇌관은 함께 운송 할 수 없으나 이 원칙이 무시되었습니다."



"호송원은 화차 내에 화기를 들일 수 없는 규칙을 무시하고 그 안에서 촛불을 켜고 잠이 들었습니다."



"화약 열차에 불이 붙었음을 알고 철도 요원들은 모두 도망쳤고, 검수원 7명이 불을 끄기 위해 화차로 달려가



모래와 물을 끼얹었으나 폭발을 막지 못했습니다."



 



3. 사건의 여파



결국 불이 다이너마이트에 붙어 폭발이 일어났습니다.



이 사고로 인해 반경 500m 건물들은 대부분 파괴되었고,



역 주변은 큰 건물 조차 형체가 남아있을 정도록, 파괴가 심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지역에서도 진동이 울렸고, 폭발음이 들렸다고 합니다.



이 때 해당 지역에 있던 사람들은 북한군에 공습인 줄 알고 서울에 사는 친척들을 걱정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때 이리에 주재하던 기자가 서울 본사한테 전화를 걸어,



"이리는 쑥대밭이다! 서울은 무사한가?"라고 물었다고 합니다.



사고 당시 이리역 구내에 석유를 가득 실은 유조화차로 조성된 열차가 대기 중 이었는데,



마침 이리역 인근에 살던 기관사가,화재가 발생했으니 열차를 신속히 이동하라는 연락을 받고,



열차를 황등역으로 이동시켰다고 합니다.



 



4.사고 이후



사고 이후, 한국화약그룹에 회장은 대국민 사과를 했고, 자신의 전 재산인 90억 원을 이재민과 피해자를 위해 



썼습니다.



그리고 당시 호송원은 도주를 했다가 잡혔고,법원에선 부작위에 의한 폭발물파열죄를 인정해 징역 10년을 선고 받았습니다.



이 사고로 당시 교통부장관이 경질되고,



익산역에는 희생자를 위한 추모비가 세워졌습니다.



이리역은 1년 뒤 사고 현장에서 떨어진 곳에 신설되었습니다.



이후 익산군과 이리시가 통합되면서 익산역으로 바뀌었는데,



이리시가 익산시로 바뀐 이유가 '이리' 하면 이리역 폭발사고가 연상되기 때문이다고 했습니다.



사실 1995년 2차 시,군 통합 당시 통합에 관한 부정적인 분위기가 우세했던 군 지역의 여론을 달래기 위한 측면이 강했습니다.



 



저는 오늘 이 기사를 쓰면서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럼 안녕히 계세요!



 



 


글쓰기 평가어린이과학동아 기자2024.01.04

1977년에 일어난 이리역 폭발사고에 대한 기사를 써 주었네요. 우리나라에서도 지하철이나 철도 사고가 종종 난 적이 있었는데요. 이리역 폭발 사고도 사상자가 많았던 안타까운 사고였네요. 아마도 어린이들이 태어나기 전이기 때문에 거의 들어본 적이 없을 텐데요. 이런 철도 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안전에 대한 규칙은 더욱 엄격하게 지켜야 된다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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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7

헉헉헉헉헉헉헉헉헉!!!!!!!!!!!!!!!!!!!


우리는 다시 이런일이 없도록 해야겠네요......

500m반경까지 건물들이 파괴되었다니.....


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