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국방력의 증강, 포항·광양제철소 건설

2024.05.24

안녕하세요~ 강민호 기자에요~ 오늘은 광양제철소 건설에 대해서 써보려고 해요. 함께 알아볼까요?



(사진출처: 나무위키)





♤포항제철소 건설



박정희 대통령은 제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준비하고 있던 중 기초 산업으로 철강 산업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어요. 하지만, 당시 경제사정으로 볼 때 국내 자금만으로 종합제철소를 짓는 것은 역부족이었죠. 선진국과 국제단체들은 무모한 일이라고 비웃었지만, 박정희 대통령은 미국 피츠버그 철강단지를 방문한 후 제철소 건설에 대한 의지를 더욱 다지게 되었어요. 1965년 박정희 대통령은 미국의 건설 기술 용역 회사 코퍼스의 회장을 만나 이 의견을 피력하였고 회장은 국제제철차관단을 만들어 제철소 건설 자금을 조달하는 것이 좋겠다고 제안했죠. 물론 부지 선정에서도 문제가 있었어요. 공화당 의장 김종필은 충남 서천이 제철소 부지가 되어야한다고 주장하고, 대통령 비서실장 이후락은 경남 울산, 박정희 대통령과의 동창 서정귀는 삼천포를 밀고 있었죠. 그러나 박정희 대통령은 서천, 울산, 삼천포도 아닌 포항을 건설 부지로 정했어요. 마침내 1973년 6월 9일 용광로에서 첫 쇳물이 흘러나왔죠.



(사진출처: 나무위키)





♤광양제철소 건설



인천제철(현대제철)과의 치열한 경합 끝에 포항제철 측이 제2제철소 사업권을 갖게 되었고, 지리적인 영향을 다각도로 종합하여 전두환 정부 때 광양만에 있는 금호도가 제2제철소 부지로 결정되었어요. 다른 후보지인 울진군은 북쪽에 있어 안보 위협이 문제가 되고 서산시와 태안군의 아산만은 수심이 얕고 조수 간만의 차가 크다는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었죠. 반면 광양만은 수심이 깊고 조수간만의 차도 그다지 크지 않았을 뿐더러 전라도에 있다는 점에서 균형발전에도 들어맞아 제철소 부지로 결정되었어요. 물론 광양만이 최적의 입지인데도 아산만으로 하라는 압박이 있었지만, 박태준 회장의 직권으로 광양만으로 결정되고 전두환 대통령도 이를 승인했죠. 부지조성작업을 거쳐 1985년 시작된 광양제철소 건설은 1992년 4기 공사가 완료되어 포스코는 조강생산 연간 2,080톤을 달성하게 되었어요.



그러나 1990년대까지만 해도 농림어업과 광공업(제철, 조선 등)이 주요 산업이었던 우리나라는 2000년대 이후 서비스업이 가장 많은 폭을 차지하게 되었어요. 지금이야 서비스업/첨단산업이 대세지만 이 시대에는 광공업이 대세였다는 점을 여러분들도 알면 좋겠어요. 그럼 이상으로 기사를 마칠께요~ 감사해요~


글쓰기 평가어린이과학동아 기자2024.05.26

제철소가 뭘 하는 곳인이 어린이 친구들은 잘 모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철광석에서 철을 뽑아내서 큰 철판 등을 만드는 곳이죠. 제철소 산업이 2000년 이전까지 산업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었지요. 오늘날은 문화 콘텐츠나, IT 등과 같은 것이 주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지만, 시대에 따라 산업도 변화합니다. 오늘 글을 통해 우리나라의 산업의 변화에 대해 조사해보아도 좋을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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