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을 넘은 시위, 광주 대단지 사태

2024.07.11

안녕하세요~ 강민호 기자에요~ 오늘은 광주 대단지 사태에 대해 써보려고 해요. 함께 알아볼까요?



(사진출처: 나무위키)



196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박정희 정부는 근대화 정책을 위해 대대적인 무허가 판잣촌 철거에 들어서기 시작했어요. 청계천과 서울역 일대에 살던 빈민들은 강제적으로 광주대단지로 이주되요. 정부는 '한 가구당 20평씩 평당 2천원에 분양한다', '입주하고 3년 뒤부터 분할상환하면 된다', '공장을 세워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다' 등의 조건을 내새웠어요. 정부가 내서웠던 조건과 달리 생계수단과 기반시설은 매우 미흡했고, 게다가 토지대금까지 납부하라고 요구해 철거이주민들은 불만이 크게 되었죠. 결국 1971년 8월 10일 분노와 패닉에 찬 철거이주민들이 11시 45분 경 성남출장소에 불을 지르고 마구 부순 것을 시작으로 사태는 시작되었어요. 이렇게 시작된 소요는 곧 난동으로 변하고, 급기야....



(사진출처: 나무위키)



위 사진과 같이 관용 지프를 뒤집어 엎고, 공무용 버스와 트럭 등을 탈취해 시민들에게 공포감과 불안감을 조장해, 폭동으로 변하고 말았어요. 곧이어 경찰기동대 700여 명이 투입되었지만 분노할대로 분노한 미친 폭도들은 경찰이고 뭐고 다 박살낸 후 주변 파출소, 주유소, 광주경찰서 성남 지서를 아예 불태웠죠. 이제 성남은 치안 부재의 지역이 되어버렸어요. 결국 양택식 서울시장은 광주대단지를 성남시로 승격시키고 기반시설을 건설하는 것으로 광주대단지 사태는 폭도들의 승리로 끝났죠. 그래도 이 사태로 얻은 이점이라고 하면, 성남시내가 말끔히 정돈되고 서울지하철 8호선이 개통되었다는.....



(사진출처: 나무위키)



일부 사람들은 이 광주대단지 사태를 놓고 정당한 투쟁이라고 주장하는데, 사실 이건 아니에요. 광주대단지 사태는 사실상 폭동이라해도 무안한 것이, 강제 철거에 저항 목적이 분명했던 철거민들과 여러 항쟁 참여자들과 달리 평범한 서민들이 재산권 침해로 인한 분노 표출로 목적을 가지지 않고 갑작스럽게 폭력을 벌였기 때문이죠. 또한 1980년 광주항쟁과 달리 광주대단지 사태 때에는 여러 약탈, 절도, 치안 부재, 폭력 행위, 방화 등이 발생했어요. 실제로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김원 교수, 서중석 역사학자와 같은 진보 인사들도 이를 폭동으로 인정했죠. 그럼 이상으로 기사를 마칠께요~ 감사해요~


글쓰기 평가어린이과학동아 기자2024.07.12

우리나라가 무척 불안정했던 시대였죠. 1960년대의 이야기는 어린이 친구들의 할머니, 할아버지가 기억하실 시대죠. 그 당시에 있었던 광주대단지 사건을 소개해 주었는데요. 민호 친구가 과거의 여러 가지 사건과 사고에 관심이 많아 보여요. 다만, 이런 사건을 소개할 때는 단순히 사건에 대해 사실을 전달하기 보다는 그런 사건을 통해 민호 친구가 어떤 생각을 전달하고 싶은지, 또 글을 읽는 친구들이 어떤 점을 알게 되고 생각해 보길 원하는지 자신의 생각을 좀 더 표현해 보길 바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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