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유물과 유적! 떴다! 신라] 7.1호 떠떳다! 청소년...... 신라] 7.1호' 떠떳다! 청소년문화재지킴이기자단'

2015.06.13

[신라]  7.1호 떠떳다! 청소년문화재지킴이기자단.
유물: 선덕여왕의 금관-아름답고 화려하고 위인이 쓰던것이기 때문에.(반짝반짝)


금관:

천마총의금관이후로 신라금관은 모습을감췄다하더라구요

제정일치사회에서 법치국가로 넘어가는단계에 제사및 샤머니즘의 의미를담고있던

나뭇가지와 사슴뿔모양의 화려한황금왕관이 전문적인 제사장역할만하는

무속인에게 양도되어 금이아닌 동으로 재작되어 잠시이어져갔고

법흥왕때 무속신앙에서 법과 불교를 숭배하는 법치국가형태로 변화합니다  

6세기이후 금관은 동관으로 모습이바뀌어 왕의 화려함과 신성삼을 의미하던도구에서

무속인의 신앙적도구로 모습이바뀌었다내요 비슷한형태에 동으로만들어져서요

선덕여왕이 7세기인물 이니 나라에서 불교를숭배하는대 샤머니즘적 의미를담은

금관을썼을지는 의문이지만 선덕여왕이 즉위하던시대엔 동관마저 사라진때입니다


금다리접시-아름답고왠지집중하게되는느낌이랄까?(오오~~)
유적: 경주 월지-야경이 아름다워서(엄지척!)


경주월지:

안압지 서쪽에 위치한 신라 왕궁의 별궁터이다. 다른 부속건물들과 함께 왕자가 거처하는 동궁으로 사용되면서, 나라의 경사가 있을 때나 귀한 손님을 맞을 때 이곳에서 연회를 베풀었다고 한다. 신라 경순왕이 견훤의 침입을 받은 뒤, 931년에 고려 태조 왕건을 초청하여 위급한 상황을 호소하며 잔치를 베풀었던 곳이기도 하다. 신라는 삼국을 통일한 후 문무왕 14년(674)에 큰 연못을 파고 못 가운데에 3개의 섬과 못의 북.동쪽으로 12봉우리의 산을 만들었으며, 여기에 아름다운 꽃과 나무를 심고 진귀한 새와 짐승을 길렀다고 전해진다. 고려시대의 『삼국사기』에는 임해전에 대한 기록만 나오고 안압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는데, 조선시대 『동국여지승람』에 "안압지의 서에는 임해전이 있다" 라고 기록되어 있어, 현재의 자리를 안압지로 추정하고 있다.

일제시대에 철도가 지나가는 등 많은 훼손을 입었던 임해전 터의 못 주변에는 1975년 준설을 겸한 발굴조사에서 회랑지를 비롯해서 크고 작은 건물터 26곳이 확인되었다. 그 중 1980년에 임해전으로 추정되는 곳을 포함하여, 신라 건물터로 보이는 3곳과 안압지를 복원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곳에서는 많은 유물들이 출토되었는데, 그 중 보상화() 무늬가 새겨진 벽돌에는 '조로 2년(調 , 680)'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어 임해전이 문무왕때 만들어진 것임을 뒷받침 해주고 있다. 대접이나 접시도 많이 나왔는데, 이것은 신라무덤에서 출토되는 것과는 달리 실제 생활에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임해전은 별궁에 속해 있던 건물이지만 그 비중이 매우 컸던 것으로 보이며, 안압지는 신라 원지()를 대표하는 유적으로서 연못 가장자리에 굴곡을 주어 어느곳에서 바라보아도 못 전체가 한눈에 들어올 수 없게 만들었다. 이는 좁은 연못을 넓은 바다처럼 느낄 수 있도록 고안한 것으로 신라인들의 예지가 돋보인다.

 밑에 사진은 경주 월지 야경과 경주월지연꽃(예쁘당~~), 금관, 금다리접시


        

글쓰기 평가현수랑 기자2015.06.15

신라의 유물에 대해 사진과 함께 자세하게 잘려주는 글이군요. 기사로 보면 왜 이런 글을 쓰게 됐는지에 대한 설명이 있고 다음에 내용이 나와야 할 것 같아요. 내용은 백과사전의 설명을 붙여넣기 한 것 같아요. 차라리 친구에게 설명하듯 사질에 친구가 생각하는 바를 적으면 더 와닿는 기사가 될 거예요 ^^

목록보기

댓글 2
멋지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