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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차 화석 탐사: 태백산 직운산층에서 만난 삼엽충과 완족류 5억년 전 태백의 기억을 더듬다
역시 강원도라서 그런지 꽃이 늦게 피어나고 있었다. 나는 개인적으로 만개한 꽃보다 봉우리를 만들어 이제 막 피어나는 꽃의 모습을 가장 좋아한다.
지난 4월 13일 총선거가 있던 날, 공식적으로 세 번째 화석 탐사를 떠났다. 아빠도 그렇고 나도 역시나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어서 지난번 포항의 신생대 화석 탐사 이후엔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4.13 총선이 임시 공휴일인지라 학교에는 현장체험학습계까지 내고 그동안 벼르던 태백에 다녀왔다. 2박 일정의 태백으로의 화석 탐사 일정은 정말 꿈같은 시간이었다.
태백지역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전기 고생대 화석산지로 알려져 있다. 고생대 오르도비스기(5억∼4억 4천만 년 전)의 직운산층에 해당하는 암석층이 즐비하게 널려있는 곳으로서 삼엽충을 비롯해서 완족류, 두족류, 복족류 등 매우 다양한 화석이 산출되는 곳이라고 한다.
지구 상에서 제일 먼저 출현한 절지동물인 삼엽충의 생존기간을 기준으로 고생대 캄브리아기를 30여 개의 시기로 구분할 수 있는데, 이곳에서 나온 삼엽충 화석을 연구한 결과 현재 북위 38°부근에 위치한 우리나라가 5억 년 전에는 적도 부근에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낼 수 있었다.
그러므로 태백 지역의 화석산지는 고생대 지구의 역사와 한반도의 자연 역사를 알아낼 수 있는 중요한 화석산지로서 학술적 가치가 크다(http://www.cha.go.kr/korea/heritage/search/Culresult_Db_View.jsp?mc=NS_04_03_01&VdkVgwKey=16,04160000,32&ref=naverdic, 자료제공).
이 이론에 따르자면 우리나라는 5억 년 전에는 무척 더운 적도였을 것이고 태백 지역도 바다였음에 틀림없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분명히 적도 부근의 따뜻한 바다는 생물이 번성하기에 알맞은 환경이었을 것이고, 여러 물질들이 퇴적하기에 알맞은 조건을 갖추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첩첩산중 태백에서 바다 냄새가 풍기는 것은 나만의 착각은 아니었다. 지금 내가 서 있던 이곳이 5억 년 전에는 바다 한가운데 적도였다고 생각하니 3D로 만든 영화 한 장면 속에 들어와 있는 기분이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태백 장성의 화석산지는 여러 가지 여건 때문에 가 볼 수가 없었다. 또한 태백의 자연사박물관 바로 아래 하천 주변과 구문소 근처는 화석 보호구역으로 일반인의 출입 자체도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화석 채취는 물론이고 탐사 자체도 힘들다.
그래서 무작정 태백 지역의 얕은 산 위주로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이곳 태백 지역은 자연사박물관과 석탄 박물관 그리고 하이원 스키장 때문에 이미 열 번도 넘게 와 본 곳이라 눈여겨 둔 곳이 있었다.
지금까지 화석을 탐사하면서 내가 직접 채취하거나 탐사한 산지는 공개했었다. 물론 그 가운데 제2차 포항 화석 탐사 때에는 고생대님의 힌트로 좋은 기회를 가지기도 했다(http://williology.blog.me/220642133909, 참고).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자신들이 탐사한 곳의 좌표를 공개하는 것을 꺼리는 것 같다.
처음에는 이유를 몰랐는데 막상 이곳에 와보니 그 이유를 알 것도 같다. 이번 태백 화석 탐사의 경우를 들어, 그 이유를 말하자면 다음과 같다.
1. 태백지역의 전기 고생대의 화석 산지들은 대부분 천연기념물로 지정이 되어 있으므로 일반인이 개인적으로 탐사할 수 없는 지역이다.
2. 1번의 이유로 인해 비록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지 장소에서 발견하였다고 하더라도 좌표를 공개해 버리면 극소수겠지만 적어도 몇몇은 앞다투어 채취해 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고생대 캄브리아기 때 바다였던 이곳은 역설적이게도 한국사람이 아니라 일본학자가 삼엽충 등과 같은 화석을 체계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실제로 삼엽충에 관한 제1호 국내박사가 배출된 것이 1995년이라고 하니 앞으로 전문 학자들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기이다. 현재는 전문 학자들조차도 온전한 화석을 채취하기가 힘들다고 한다. 그런 상황을 고려해 볼 때, 개개인이 소유의 목적으로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장소를 훼손하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니다.
사실 몇 년 전 지금보다 더 어린 4학년 때 이번 산지에서 삼엽충을 채취한 적이 있었다. 그때도 우연히 발견한 것인데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주머니에 쓰윽 넣어서 가지고 왔다. 지금도 내 실험실 한편에 보관되어 있다. 미안한 마음이 든다.
결국 이번 태백 화석 탐사의 경우에는 산지의 좌표를 공개하지 않는 편이 좋겠다고 결정했다.
나의 경우에는 조심스러워서 아빠와 둘이서 아무런 장비도 없이 오직 맨손으로 오랜 시간 동안 공들여서 찾아냈다. 또한 운도 좋았던 것 같다. 무척 선명하고 잘 보존된 상태의 삼엽충은 물론이고 완족류까지 찾아냈다. 이리저리 관찰하고 촬영한 뒤에는 제자리에, 더 정확히 말해서 깊이 숨겨두었다.
일반인들의 탐사는 어디까지나 관찰에 그쳐야 한다는 게 우리의 결론이다.
솜씨 좋은 강태공 아저씨들이 말하는 손맛처럼 화석 탐사도 어디까지나 발견하고 관찰해서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운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럼 내가 발견한 멋진 화석 친구들을 만나보자^^
꽤 온전해 보이는 이 삼엽충은 태백 자연사박물관 아래 하천에 있는 큰 셰일 암석 덩어리에서 발견했다. 물론 이곳 자체가 보호구역이니 더 이상의 훼손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어차피 반으로 갈라져 있는데다 보존상태도 온전하지는 못 했다.
삼엽충은 캄브리아기 초인 5억 2천만 년 전부터 페름기 말인 2억 5천만 년 전까지 고생대 전시기에 걸쳐 약 3억 년 동안 생존했던 절지동물의 조상이다.
삼엽충이란 이름은 머리를 위로 두고 세로로 놓았을 때, 세로로 머리, 가슴, 꼬리 세 부분으로 나뉘고, 가로로도 중심과 양옆 부분으로 나뉘는 ‘세쪽이’인 데서 왔다. 키틴질과 방해석으로 된 껍질로 부드러운 몸과 다리를 보호한다.
크기는 1㎜에서 72㎝까지 다양하나 보통 3~10㎝ 크기이다. 모두 2만 종이 밝혀졌으며 해마다 새로운 종이 발견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300여 종이 기록돼 있다. 삼엽충은 새우나 게처럼 자랄 때 탈피를 하고 죽은 뒤 쉽게 몸이 조각나 많은 양의 화석이 조각 형태로 발견된다. 온전한 형태의 화석은 드물다(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rid=36&contents_id=1473, 자료제공).
이 포스팅에서 소개할 대부분의 삼엽충도 제대로 된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정말 이 "세쪽이" 삼엽충은 그 이름처럼 잘게 나뉘어 발견되었다.
화석 답사는 꼭 화석만 찾게 되지 않는다. 이렇게 작고 귀여운 벌집도 발견하게 되고
방귀버섯도 만나게 되며
상상도 못할 만큼 거대한 말벌집도 볼 수 있으며,
왜가리의 비상장면도 눈앞에서 볼 수 있으며,
올챙이는 덤이다.
운이 좋으면 털두꺼비하늘소도 만나게 된다. 이웃 블로거 읭읭에게 현장에서 카톡으로 물어봤는데 친절하게 답해줬다. 읭읭에게 표본으로 만들어서 선물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읭읭이라는 별명을 가진 이승현씨는 서울대학교에서 곤충을 연구하는 대학원생인데 하늘소 도감도 출판한 실력자다.
마침 내가 발견한 이 털두꺼비하늘소는 우리나라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하늘소 중 하나이며 일 년 중 가장 먼저 나타나는 "평범한" 녀석이라는 말을 듣고 살며시 보내줬다. 등에 난 뽀송뽀송한 털을 쓰다듬어줬더니 화가 좀 풀리는지 가만히 있었다. 자기를 어떻게 할까 봐 어찌나 울어대던지 마음에 걸렸는데 오히려 잘 된 일이다.
레고 사람을 가져갔으면 크기를 알기 쉬울 텐데 아쉬웠다. 급한 대로 내 손도 살짝 등장하니깐 참고하면 좋겠다. 언뜻 조개처럼 보인다. 작지만 꼬리의 볼륨이 그대로 나와있어서 나름 소중한 자료가 될 것 같다.
몸통은 2-40 개의 마디로 이루어져 있어서 몸을 동그랗게 움츠릴 수도 있다. 꼬리는 반원형이다.
몸통의 마디 간격이 꽤 넓은 걸로 봐서 몸을 쭉 뻗은 상태처럼 보이기도 하다.
누군가 채취하려고 망치질을 한 느낌이 든다. 너무 부자연스럽게 사방이 잘려나갔다.
뭔가 한쪽 방향으로 살짝 짓눌린 느낌이다.
몸통의 마디가 꽤 선명하다. 두 마리가 나란히 찍혀있다.
돌레로바실리쿠스Dolerobasilicus의 몸통. 삼엽충 쪽이 아니라 반대편 찍힌 부분인데 몸통의 간격과 선명도가 가장 우수하다. 반대편을 찾아보려고 1시간을 뒤졌으나 소용없는 일이었다. 아쉽다.
반대편에 있었을 원형이 보고 싶다. 그래도 등껍질이라도 조금 남아 있었다. 핀셋으로 살짝 뜯어서 성분분석을 해보면 키틴질 성분이 나올 것이다.
누가 세쪽이가 아니랄까 봐 칼로 자른 듯이 몸통 부분만 남았다.
이렇게 삼엽충 화석의 대부분은 몸통만 남아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하루 종일 삼엽충만 살펴보고 있었더니 조만간 코엑스 아쿠아리움에 있는 투구게(Horse Crab)라도 보고 와야 할 것 같다.
난 사실 삼엽충의 화석보다 이렇게 뭔가 다양한 종들로 이루어진 화석에 더 마음이 간다.
삼엽충이 살았던 캄브리아기는 종의 대폭발이라고 불릴 만큼 셀 수도 없이 많은 종들이 하루아침에 생겨났다고 한다. 특히 이 가운데에서 삼엽충만큼 유명하고 또한 대적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포식자였던 아노말로카리스(anomalocaris)의 유해일 수도 있다는 상상을 하면서 계속 쳐다봤다. 누가 뭐래도 이런 상상들이 화석탐사의 또다른 묘미일 것이다.
두 마리의 삼엽충이 가로세로로 엇갈려 있는 모습. 첨에는 무슨 수생생물의 꼬리처럼 보였다.^^ 하루종일 산속에서 삼엽충만 쳐다봤더니 헛것이 보이기도 했다.
우측의 작은 삼엽충 몸통을 제외하고 나머지 부분은 삼엽충의 유해나 기어간 흔적 혹은 배설물일 수도 있다. 화석은 생물 자체뿐 아니라 이런 모든 것을 총칭하는 말이다. 왼편의 것은 실지렁이처럼 보이기도 하다. 궁금하다.
1cm 내외의 작은 삼엽충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몸통에 난 주름은 다른 생명체로부터 공격을 받을 경우 몸을 공처럼 움츠려서 말 때 유용했을 것이다. 쥐며느리와 같은 포즈를 취했을 것이다.
몸통의 줄무늬가 안 보여서 조금 고민했지만, 움푹 패인 꼬리 부분이 확실히 삼엽충이라는 것을 증명해준다.
오동통한 몸통의 볼륨이 느껴지는 삼엽충.
일거양득이라고 해야 할까?^^
이곳에서 볼 수 있는 평균적인 크기의 삼엽충. 몸통의 길이가 대략 3~4cm에 불과하다.
자, 이제 5억 년 전 캄브리아기에 태어난 친구를 소개하겠습니다.
5억 년이라는 어마어마한 시간 동안 차디 찬 셰일 암반에 갇혀 있던 녀석입니다.
보이시나요?
꽤 큰 편이죠?
조개일까요?
아닙니다. 그것은 바로 바로....^^
이번 화석 탐사에서 발견한 가장 온전한 형태의 바실리엘라 티피칼리스(Basiliella typicalis)의 모습이다. 무심코 떨어져 있는 셰일 암석을 워 주변 바위에 대고 툭하고 내리쳤는데 저렇게 정확히 반으로 갈라지면서 멋진 바실리엘라 티피칼리스의 몸통 부분을 보여주었다.
5억 년 동안 햇빛 한번 못 보고 갇혀 있었던 삼엽충을 세상 밖으로 보내주는 순간이다.
삼엽충의 잔해들인지 아니면 삼엽충과 공생관계를 맺고 지냈을 생물체들의 유해로 보인다.
사실 이번 탐사에서 가장 큰 수확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완족류 화석이다. 겉은 단단한 셰일 암반, 속은 부드러운 흙 속에서 5억 년의 시간을 견디며 예쁘게 숨어있는 완족류의 모습이 그저 신기하기만 하다.
옆쪽에 보이는 작은 구멍들(벌레흔) 속에는 아마 아주 작은 벌레들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을 것 같다.
너무 궁금해서 이 완족류를 애워싸고 있던 흙을 살살 긁어서 가져왔다. 이곳이 5억 년 전 적도 부근의 얕은 바다였다면 미생물도 살았을 것이다. 그 미생물도 이 석회암과 황토색 셰일 속에 어쩌면 그 흔적을 남겼을지도 모를 일이다.
다음에 이곳으로 실체현미경을 들고와서 직접 관찰해 볼 예정이다. 무거운 현미경을 이곳까지 운반해 줄 아빠에게 미리 감사를 드린다~^^
혹시나 하는 기대감이 가설이 되고 그 가설이 사실이 되는 순간을 고대한다.
윤관우 기자
글쓰기 평가현수랑 기자2016.04.27
우와~! 정말 전문가와 함께하는 화석 여행을 다녀온 것 같아요. 정말 신기하고 재미있네요. 또 화석을 채취하는 장소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고, 함부러 채취하면 안되는 이유에 대해서도 잘 설명했어요. 정말 잘했어요~ ^^
화석은 발견하기 힘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저도 한 번 찾아보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