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날 기념 - 소파 방정환 선생님의 일생에 대하여

2016.05.05

 



소파 방정환 선생님은 1899년 11월 9일에 서울 당주동 야주개 동네에서 태어났다. 방정환은 집안의 큰손자로 사랑을 받으며 자랐다.



 



어느 날 두 살 위인 삼촌 뒤를 따라다니다 보성 소학교의 교장선생님을 만났다. 선생님은 댕기머리를 자르라고 했고 방정환은 그 말을 따랐다. 이 때문에 방정환은 할아버지에게 혼났다. 하지만 할아버지도 방정환의 고집을 꺾을수 없어서 끝내 방정환은 비단모자를 쓰고 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방정환의 집으로 빚쟁이들이 찾아왔다. 할아버지가 빚보증을 잘못 서는 바람에 집과 살림을 몽땅 빼앗긴 것이다. 방정환의 집은 가난해졌고 어머니는 병이 들었다. 그리하여 항상 배고프고 힘들게 다녔다. 그리고 얼마 뒤 집에서 가까운 학교로 옮겼다. 며칠 뒤 방정환과 친구들은 모임을 만들고 '물이 나을까, 불이 나을까'와 같은 주제로 생각을 이야기하며 놀았다.



 



방정환은 천교도 일을 하며 생활하였다. 그리고 나서 결혼을 하고 다시 공부를 시작하였다. 더 크고 나서 조선일보를 만들고 나서 색동회라는 모임을 만든 뒤에 색동회에서 1923년 5월 1일을 제 1회 어린이날로 지정했다. 방정환은 색동회에서 어린이라는 잡지도 만들었다. 어린이 잡지를 만들고 난 뒤에 4년 동안 세계아동 예술 전람회를 열었다.



 



어느 날 방정환은 코피를 흘리며 병원으로 실려갔고 다음날 유언으로 어린이들을 위해 애써주라고 했다. 1931년 7월 23일 방정환은 33살의 나이로 눈을 감았다.



 



방정환이 떠난 이듬해에는 어린이 잡지가 폐간되고 1934년에는 어린이날 기념식도 열리지 못하였다. 하지만 1945년 8월 15일에 광복이 되자 사람들은 어린이 잡지를 다시 만들기 시작하였고 어린이날도 다시 5월 5일로 정해졌다.



 



우리 모두 방정환 선생님을 기억하자.




글쓰기 평가어린이과학동아 기자 기자2016.05.06

어린이날을 즐겁게 보냈나요? 어린이날을 맞이해 방정환 선생님 기사를 쓰다니, 참 좋은 생각이에요! 방정환 선생님의 어린 시절부터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 일목요연하게 잘 정리했어요. 특히 어린이를 위하는 모습을 강조한 점이 좋아요. 제목도 ‘탄생 117주년 기념’ 보다 ‘어린이날 기념’이 어떨까요? 방정환 선생님이 ‘어린이’라는 말을 만든 분이니 고친 제목이 더 좋을 거예요.

기사에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어투를 통일하는 것이 좋아요. [자랐습니다]->[자랐다], [기억합시다]->[기억하자] 등으로 고쳤어요.

긴 문장은 중간에 끊어주면 읽기가 훨씬 편해져요. 다음 두 문장을 짧은 문장들로 고쳐볼게요.

1. [어느 날 두살 위인 삼촌뒤를 따라다니다 보성 소학교에 교장선생님을 만났는데 댕기머리를 자르라고 하고 잘랐다고 할아버지에게 혼났다.]->[어느 날 두 살 위인 삼촌 뒤를 따라다니다 보성 소학교의 교장선생님을 만났다. 선생님은 댕기머리를 자르라고 했고 방정환은 그 말을 따랐다. 이 때문에 방정환은 할아버지에게 혼났다.]

2. [그러던 어느 날 방정환네집으로 사람들이 찾아왔는데 그 이유가 할아버지가 빛보증을 잘못서는 바람에 집과 살림을 몽땅 빛쟁이들에게 빼앗긴것이다]->[그러던 어느 날 방정환의 집으로 빚쟁이들이 찾아왔다. 할아버지가 빚보증을 잘못 서는 바람에 집과 살림을 몽땅 빼앗긴 것이다.] 참고로, 빛이 아니고 빚이에요.

그리고 중간에 ‘하지만’이 너무 많이 반복되어요. 몇 개 지웠어요. 지운 것이 오히려 자연스럽죠?

방정환 선생님이 조선일보를 ‘만들었다’는 표현이 애매해요. 방정환 선생님이 조선일보를 ‘창간’한 것은 아니겠죠? 정확하지 않은 내용은 빼는 것이 좋아요.

이 외에도 다듬은 문장은 밑줄 그었으니 확인해보세요.

어린이날인데도 놀지 않고 멋진 기사 쓰느라고 수고가 많았어요. 다음 기사도 기대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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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
기사가 유익하고 재미있었어요. 우리 어린이들을 위해주신 방정환 선생님께 감사한 마음이 드네요~
재밌는 정보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