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과학동아&수학동아 기사
우리가 몰랐던 경주 문화유산 이야기
저는 이번 어린이날을 기념해 5월 3일~5일, 3일 동안 경주 가족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여행을 하면서 새롭게 알게 된 문화유산과 관련된 몇 가지 재밌는 사연을 기사로 쓰려고 합니다.
1. 태종무열왕릉
태종무열왕릉은 삼국통일의 발판을 마련하고 백제를 정복한 김춘추의 무덤입니다. 김춘추는 왕이 되기 전부터 삼국통일이라는 같은 꿈을 나눈 김유신의 절친한 친구이자 조카였는데 여기에는 특별한 사연이 있었습니다. 이 사연은 당시 왕이었던 선덕여왕과 김유신, 그리고 김춘추와 관련이 있습니다. 세 사람은 각자의 이유로 권력을 차지하는 데 약점이 있어서 똘똘 뭉치게 됩니다. 먼저, 선덕여왕은 신라의 첫 번째 여왕이어서 여자라는 이유로 귀족들이 얕보았습니다. 그다음 김유신은 금관가야 마지막 왕인 구형왕의 손자였습니다. 금관가야의 왕족들을 신라의 진골 귀족으로 만들어주겠다는 조건으로 금관가야가 신라에 복속되면서 진골 귀족이 되었지만 다른 신라 귀족들의 무시를 당했습니다. 마지막으로 김춘추는 원래 왕이 될 수 있는 성골이었지만 할아버지 진지왕이 폐위되면서 신분이 진골로 낮아지면서 귀족들이 업신여겼습니다. 선덕여왕은 자식이 없었고 신라에 성골은 승만 공주(훗날 진덕여왕)만 남아 있어 두 여왕이 모두 일찍 사망하면 김춘추가 왕위를 계승할 가능성이 가장 컸습니다. 그래서 꾀가 많았던 김유신이 그를 여동생과 결혼시키기 위해 출국을 하던 중 김춘추의 옷을 일부러 뜯어 지게 한 후 둘째 여동생 문희가 그 옷을 꿰매 주면서 둘 사이에 사랑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미 결혼한 남자였던 김춘추가 문희와 결혼하려고 하지 않자 선덕여왕의 행차 때 문희를 불태우는 척해 여왕의 허락을 받아 문희와 김춘추를 결혼시켰습니다. 그 후 선덕여왕과 진덕여왕이 모두 김유신의 예상대로 자식이 없이 일찍 죽으면서 김춘추가 왕이 되었고, 그가 바로 신라와 백제를 통일한 태종무열왕입니다.
태종무열왕릉 무덤 자체는 경주의 다른 왕릉에 비해 그리 특별한 것이 없지만 비석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보통 비문이 적혀있는 몸통은 남아 있지 않고 비석의 받침인 귀부와 머릿돌인 이수만 남아 있음에도 신라의 정교한 조각 수준을 잘 보여주며, ‘태종무열대왕지비’라는 글자를 통해 무열왕의 무덤임을 확실히 알 수 있어 국보로 지정되었기 때문입니다.
2. 김유신 장군 묘
김춘추와의 재미있는 이야기를 남긴 김유신은 모두 알다시피 신라의 아주 뛰어난 장수로 삼국통일에 큰 공을 세웠습니다. 그래서 훗날 통일신라의 흥덕왕이 김유신에게 흥무대왕이라는 작호를 내렸습니다. 김유신 장군의 묘는 아래쪽이 돌로 둘러싸여 있는데 그 중간중간 십이지신을 새긴 돌 못이 박혀 있습니다.
또 원래는 비석에 ‘묘(墓)’라고 새겨져 있던 것을 왕으로 추대된 후 ‘릉(陵)’으로 바꾸면서 비가 오거나 물이 묻으면 ‘墓’ 자가 나타난다고 하니 방문하면 확인해 보세요. 저는 확인해 보았습니다.
3. 문무대왕릉과 감은사지
문무대왕릉은 역사상 유례가 없는 형태의 무덤입니다. 삼국통일을 이룬 문무왕은 죽으면 용이 되어 신라를 지킬 테니 동해에 묻으라는 유언을 남겼고, 그에 따라 화장하여 유골함을 동해에 묻었습니다. 현재 경주 봉길 해수욕장 맞은편 바다에 있는 작은 바위섬이 바로 문무왕의 수중 무덤이라고 합니다.
감은사지는 문무대왕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감은사라 이름 지었고, 지금은 터와 두 개의 삼층석탑만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법당 아래에는 동해 쪽으로 배수로를 만들어 용이 된 문무왕이 드나들 수 있도록 하였다고 전해집니다.
4. 대릉원
대릉원은 큰 무덤 공원이라는 뜻으로 무덤 50기가 모여 있어 신라 시대 왕족과 귀족들의 공동묘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많은 무덤 중 제가 소개하고 싶은 것은 황남대총과 천마총입니다. 황남대총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무덤으로 높이가 24m에 달합니다, 무덤 발굴 조사 당시 경험이 없었던 우리나라 발굴단은 황남대총의 크기가 부담스러워 천마총을 먼저 발굴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천마총에서 머리부터 발끝까지의 화려한 금 장신구들과 천마도 그리고 멀리 지중해 지역으로부터 수입된 유리잔 등 수많은 유물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이에 자신감을 얻은 발굴단이 황남대총 또한 조사하였는데 나이가 많은 남자의 무덤에서는 어린 소녀들의 뼈가 함께 나와 순장제도가 있던 시대의 무덤임을 짐작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남자의 무덤에서는 금동관이 여자의 무덤에서는 금관이 출토되어 여성 또한 상당한 권력을 가졌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현재 내부가 공개된 무덤은 천마총뿐이지만 주변 무덤들 중 큰 흰 돔을 씌워놓고 발굴을 진행 중인 곳에 예약 후 방문하면 직접 발굴 현장을 볼 수 있다고 하니 가보면 좋을 듯합니다. 저는 아쉽게도 보지 못했습니다.
5. 석굴암과 불국사
불국사와 석굴암에는 몇 가지 일화가 있습니다. 먼저 석굴암은 경주 토함산에 있는데 ‘토했다가(吐) 머금는다(唅)’라는 뜻으로 동해로부터 안개가 자주 올라와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그래서 숨구멍을 내고 내부 온도보다 찬 샘물이 흐르게 하여 습도 조절이 잘되도록 과학적으로 설계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일제 강점기에 석굴암을 조사하겠다고 분해한 후 다시 맞추는 과정에서 없었던 틈이 생기자 겉면을 두꺼운 콘크리트로 덮어버리고, 내부의 샘물도 막아버렸습니다. 그러자 이후 석굴암 내부에 습기가 차면서 곰팡이와 이끼가 생기고 석굴암이 훼손되었습니다. 외부 콘크리트를 제거하려고 시도하였으나 불가능해서 지금은 히터와 에어컨으로 습기를 조절하고 있는데 석굴암 내부 에어컨 설치 이전에는 우리나라에 에어컨이 없었기 때문에 석굴암 본존불이 우리나라 최초 에어컨 사용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다음으로 불국사 이야기입니다. 불국사의 목조 부분은 몽골의 침입 당시 모두 불타 없어졌던 것을 조선 후기에 복원한 것이지만 석조 부분은 신라 시대의 것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이 기단 부분에는 그랭이 공법이라는 지진에 강한 건축 기법이 사용되어 그 옛날 선조들의 뛰어난 건축술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또 불국사에는 국보가 일곱 개나 있습니다. 먼저 불국사의 두 개의 다리인 연화교와 칠보교, 백운교와 청운교가 국보입니다. 그다음으로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석가탑과 다보탑이 국보이고, 대웅전과 극락전에 있는 석가모니불과 아미타불이 국보입니다.
마지막 국보는 굉장히 특별한데 여기에는 재밌는 사연이 있습니다. 석가탑에 있는 보물을 훔치기 위해 온 도굴꾼들이 있었습니다. 이 도둑들은 보통 탑에는 1층에 보물이 있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석가탑을 들어 올려 보물을 훔치기 위해 리프트 잭을 가져왔습니다. 그러나 석가탑의 무게가 상당했기에 너무 작은 것을 가져와서 실패했습니다. 둘째 날에는 석가탑 일 층을 들어 올린 후 흙과 돌을 걷어냈지만,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셋째 날에는 삼층을 들어 올렸는데 삼층에도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다음 날 새벽 어린 스님이 석가탑이 기울어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 스님이 이 일을 주지 스님에게 보고하자 불국사 스님들이 이 일을 문화재청에 신고하고 문화재청에서는 석가탑을 재조립하자는 판결을 냈습니다. 그래서 석가탑을 재조립하기 위해 모두 분리했는데 이 층 기단에서 국보가 발견되었습니다. 이 국보는 바로 현재 불국사 박물관에 소장 중인,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목판 인쇄물인 무구정광대다라니경입니다. 이 인쇄본이 발견되기 전까지는 일본의 백만탑다라니경이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목판 인쇄물로 알려져 있었는데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 일본 인쇄물보다 20년 먼저 인쇄된 것으로 밝혀지면서 온 세상이 놀랐습니다. 중소 도시에는 국보가 없는 곳도 많은데 불국사 내에만 국보가 7개이니 불국사가 우리나라에 5대 사찰 중에 하나로 꼽히는 것도 이해가 되고 충분히 방문할 가치가 있다는 것도 알 수 있습니다.
6. 첨성대
이 첨성대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천문대로 신라 선덕여왕 시대에 만들어졌습니다. 첨성대 아래쪽에는 문이 없고 위쪽에 큰 창문만 있는데 첨성대 내부에 흙이 쌓여 있어서 사다리를 놓고 이 창문으로 들어간 후 안쪽에서 흙을 밟고 또 다른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천체 관측을 했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첨성대는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이미 약 20cm 정도 기울어져 있었는데 2016년 경주 지진으로 북쪽으로 2cm 더 기울어지는 안타까운 일도 있었습니다. 실제가서 보니 눈으로도 기울어진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 언젠가 또 지진이 일어날 수도 있으니 우리의 소중한 국보인 첨성대를 보호하기 위한 대책이 필요하겠습니다.
만약 경주에 가게 된다면 제가 소개한 유적들에 꼭 들러서 거기에 얽힌 사연들을 눈으로 직접 확인했으면 좋겠습니다.
이 기사가 도움이 되길 바라며 이상으로 기사를 마치겠습니다.
글쓰기 평가어린이과학동아 기자2023.05.14
와~경주 여행 후 정말 많은 것을 알게 되었네요! 여행하면서 이렇게 많은 역사적인 내용을 알게 된다는 건 여행 전에도 많은 준비를 하지 않았을까 예상을 해 봅니다. 경주는 도시 자체가 박물관같은 곳인데요. 경주 여행을 하면서 주요 곳에서 알게된 역사적인 내용을 정말 자세하게 생생하게 정리해 주었어요.
참고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우수기사 축하해요
저도 한 번 가보고싶네요. ^^
6월여행시참고가되어요
우수기사여서 들어왔는데 재미있는 기사네요. 우수기사인 이유가 다 있었네요!
우수기사네요! 정말 대단해요:)
우수기사 축하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