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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 김정희 선생님의 발자취 2 - 쓸쓸한 제주 유배지와 세한도 탄생 이야기
안녕하세요. 저는 이수초등학교 이소정 기자입니다. 오늘은 9월 3일! 제주도에 여행을 와서 우리 가족들과 함께 제주도에 있는 추사 김정희 박물관 및 유배지를 찾아가 보았습니다. 지난 번에 과천의 추사 김정희 박물관을 가보고 기사를 올렸었는데요. 그 때 세한도가 가장 기억에 남았었는데, 마침 이곳 제주도에 여행을 와서 김정희 선생님의 유배지를 볼 수 있게 되어서 너무 설레고 흥분이 되었습니다.
우선 유배지와 연결되어 있는 추사 김정희 선생님 기념관을 둘러보게 되었습니다. 추사관과 유배지는 제주도 서귀포시 대정읍 추사로 44번지에 있습니다. 저희는 운이 좋게도 기념관에 계신 해설사님께 부탁을 드려 김정희 선생님에 대한 설명을 잘 들을 수 있었습니다.
아래 사진은 기념관 사진입니다. 이 기념관은 추사 김정희 선생님의 제주 유배 시절을 기념하기 위해 2010년에 건축가 승효상이 만들었다고 합니다. 이 곳에는 김정희 선생님의 현판 글씨, 편지 글씨, 추사 선생님 지인의 편지 글씨 등 선생님의 유물 등이 전시되어 있는 곳입니다. 이 기념관의 모습은 아래쪽 사진으로 보이는 세한도의 집을 나타냈다고 합니다. 정말 소나무도, 창문의 모습도 세한도의 풍경과 똑같은 모습인 것 같아 신기했습니다.
기념관에 들어서자 해설사 선생님께서 세한도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약 15분간 해 주셨습니다. 지난번 과천과학관 탐방기에서 세한도는 추사 김정희 선생님이 제주도 유배 중일 때 제자 이상적을 위해서 선생님이 직접 그리신 그림이라고 소개해 드렸는데요. 해설사 선생님께서 새로운 사실을 알려 주셨습니다. 제자 이상적이 여러 책들을 연경에서 사서 김정희 선생님에게 전해주었는데, 이에 대한 보답으로 김정희 선생님께서 세한도를 그려서 주었다는 것입니다.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 중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해설사 선생님께 추가로 질문한 내용을 조금 더 소개해 드릴께요.
Q. 세한도에서 보이는 소나무와 측백나무는 무엇을 의미하나요?
A. 제일 오른쪽 소나무는 김정희 선생님을 나타냅니다. 김정희 선생님의 외로움은 잎이 다 떨어져 있는 힘든 나무의 모습을 나타낸다고 해요. 또 오른쪽 소나무 끝의 솔잎들은 아직 남아있는 희망을 나타낸다고 해요. 그 옆 왼쪽에 있는 나무는 김정희 선생님을 지켜주는 제자 이상적을 나타낸다고 해요. 즉, 옆에서 햇빛을 가려주는 튼실한 나무를 이상적로 표현한 것이지요. 그 왼쪽의 측백나무들은 멀리서 지켜봐 주는 제자들의 모습을 나타낸 것입니다. 여기서 계절은 겨울이고 뒷 배경에 눈이 날리는 가운데, 쓸쓸하고 단조로운 집의 모습은 어색하고 외로운 김정희 선생님의 유배지를 나타낸다고 해요.
Q. 세한도의 가로 두루말이 길이가 무척 긴데 왜 그럴까요?
A. 두루말이의 총 길이는 약 14m입니다. 이상적 선생님이 세한도를 가지고 연경에 가서 학자들에게 보여주고 총 19인이 세한도에 댓글을 달아주셔서 세한도의 길이가 길어진 것입니다. 많은 이들의 격려가 담긴 댓글은 김정희 선생님에게 큰 힘이 되었다고 합니다.
Q. 선생님은 왜 유배를 가셨나요?
A. 경주 김씨인 김정희 선생님은 안동 김씨의 정치 모함을 받으셨습니다. 그래서 1840년 윤상도 옥사사건에 관련 되었다는 이유로 55세 때 제주도에 유배를 가서 9년 동안 지내셨습니다. 이 때 김정희 선생님은 당시 외교관과 같은 중요한 역할을 위해 중국에 가기로 되어 있었는데, 중국에 가지도 못하고 억울한 누명을 쓰게 되어서 크게 절망하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끝까지 죄를 부인하면서 곤장을 많이 맞으셔서 제주도에 오셨을 때는 몸이 많이 아프셨다고 합니다. 또 제주도에 계시는 동안은 위리안치라는 형벌을 받으셨습니다. 위리안치는 귀양을 간 죄인이 그곳에서 달아나지 못하도록 가시로 울타리를 만들고 그 안에 가두는 형벌이라고 합니다. 집밖을 못 나갔던 김정희 선생님이 너무 안되셨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 동생은 선생님이 도끼로 가시를 뚫고 나가면 안되냐고 했습니다. 그럴 수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나라의 명령으로 그러지 못하셨을 선생님의 아픈 마음을 이해할 수 있네요.
Q. 선생님이 유배 가실 때 정말 혼자 가셨나요?
A. 하인 1- 2명 정도는 같이 갔고 가족은 같이 가지 못했다고 해요.
해설사 선생님은 마지막으로 '판전' 현판에 대한 소개를 해주셨습니다. '판전'은 봉은사의 목판으로 된 경판을 보존하기 위한 건물입니다. 봉은사에 자주 왕래하시던 김정희 선생님께 봉은사 쪽에서 특별히 부탁을 드려서 '판전' 현판이 제작되었다고 합니다. 이 현판은 김정희 선생님이 병 중에서도 힘을 다해 쓰신 것으로 돌아가시기 3일 전에 제작되었다고 합니다. 김정희 선생님께서 몸이 아프신데 봉은사가 부탁을 한 것이 잘 이해가 안되지만, 김정희 선생님께서 그만큼 글씨를 잘 쓰신 것이겠지요. '판전'의 글씨가 기교가 없이 단순한 이유는 선생님이 아프셔서이기도 하지만 김정희 선생님의 예술적 경지가 높아지셔서 꾸미지 않은 순수함이 표현되어서라고 합니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서울의 봉은사에 가서 '판전' 현판을 보고 싶어졌습니다.
해설사 선생님의 설명을 듣고 나서 뒤이어서 기념관과 연결되어 있는 추사 김정희 선생님 유배지로 올라가 보았습니다. 선생님은 1786년부터 1856년까지 총 9년간 이 곳에서 유배 생활을 하셨다고 합니다. 이 곳은 특별한 의미가 있는 곳인만큼 2002년 4월 17일 제주기념물 제 59호로 지정되었다가 2007년 10월 10일 국가지정문화재 사적 제 487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유배지를 가 보니 특이한 점이 바로 눈에 띄었습니다. 바로 아래 사진에서 볼 수 있는데요. 제주도 특유의 대문인 정낭이라고 합니다. 기둥이 모두 내려져 있으면 주인이 있는 것이고 두 개 걸쳐 있으면 주인이 저녁에 온다는 것이고 모두 걸쳐져 있으면 집을 떠났음을 알려준다고 합니다. 주인이 있고 없는 것을 알려주는 정낭은 옛사람의 지혜가 돋보이는, 제주에서만 볼 수 있는 특별한 아이디어 같아요. 또 요즘처럼 도둑이 많은 시대에 비해 이웃 간에 믿고 주인이 있고 없음을 알려주는 제주의 옛 풍습도 참 신기한 것 같아요.
김정희 선생님 유배지에는 여러 가지 모양의 초가집이 군데군데 많았어요. 초가는 주인댁이 살던 안거리(안채), 사랑채인 밖거리(바깥채), 모거리(별채), 제주도 특유의 화장실인 통시와 대문간, 방앗간 그리고 위에서 말씀드린 정낭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아래 사진이 김정희 선생님이 유배하실 때 머무시던 밖거리입니다. 바깥채는 제주도의 방언으로 한 집 안에 안팎 두 채 이상의 집이 있을 때 바깥에 있는 집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이곳에서 선생님은 제주도의 마을 청년들에게 학문과 서예를 가르치기 위해 애쓰셨다고 합니다. 유배지에서도 제자를 가르치셨던 모습이 대단합니다.
아래 사진은 선생님이 머무르시던 별채인 모거리입니다. 이곳에서 선생님은 추사체를 완성하고 세한도를 포함한 여러 점의 서화를 남기셨다고 합니다. 외로운 유배지에서 조차 학문과 예술 작품을 향한 그 노력을 본받고 싶습니다.
또 눈에 띄는 곳은 돗통시라는 곳으로 어린이과학동아 독자분들께 꼭 소개해드리고 싶었습니다. 아래 사진에서도 볼 수 있듯이 돗통시는 사람들의 인분을 돼지에게 주고 돼지의 배설물을 식물의 거름으로 주는 제주도만의 특별한 화장실 형태라고 합니다. 서울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화장실인데요. 인분과 가축의 배설물을 잘 활용한 곳인 듯합니다. 화장실도 되고 돼지들의 먹이와 식물의 거름도 공급되니 일석이조네요.
김정희 선생님 유배지에서 또 발견한 것은 김정희 선생님과 특별히 우정을 나누고 유배지까지 찾아와 준 스님이 계시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래 사진은 유배지에서 김정희 선생님과 두터운 우정을 자랑하는 초의 의순 스님이 함께 있는 모형 전시물 입니다. 유배지의 설명 자료에는 1815년 처음 만난 추사 선생님과 초의 스님은 시와 글씨를 주고 받기도 하였고 1843년에는 초의 스님이 제주도에 내려와 6개월 간 김정희 선생님과 함께하셨다고 합니다. 외로운 유배지 생활에서 초의 스님 같은 분이 찾아와 주시니 그나마 선생님께서 마음이 편하셨을 것 같습니다.
유배지를 둘러보고 나서는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마지막으로 유배지와 2km 정도 떨어진 단산 아래에 있는 대정향교에 들러보기로 했습니다. 왜냐하면 김정희 선생님이 '의문당'이라는 현판을 대정향교 학생들의 기숙사인 동재에 걸어 놓았다는 것을 김정희 기념관 안내지에서 보았기 때문입니다.
향교는 조선시대의 지방 교육 기관입니다. '의문당'은 추사의 스승 완원의 호이며, 학문을 할 때 의문을 가지고 세계에 대한 호기심과 탐구 정신을 가지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저랑 동생도 김정희 선생님의 현판 글씨가 궁금했는데 직접 김정희 선생님 '의문당' 글씨를 보면 도움이 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대정향교에서 '의문당' 현판을 보고 사진에 담았습니다.
이번 기사에서는 세한도와 김정희 선생님 제주 유배지를 소개해 드렸는데요. 이 곳에서 많은 것을 알게 되어 보람 있었고 멋진 풍경도 정말 멋졌습니다. 여러분도 제주도에 여행 갈 기회가 생기면 김정희 선생님 기념관과 유배지에 꼭 들러보세요. 유배지에서의 힘든 생활 속에서도 끝까지 자신의 작품을 만드신 선생님의 열정을 만나 보실 수 있을 거예요. 또 제주도 밖에서도 선생님의 훌륭한 글씨와 작품들을 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꼭 방문해서 여러분께도 소개해 드리고 싶습니다. 특히 서울 봉은사와 해남 대둔사 일지암을 방문해서 김정희 선생님의 작품을 보고 나면 소개해 드릴께요.
글쓰기 평가어린이과학동아 기자2016.09.08
같은 주제로 두 번째 기사를 쓰다니, 멋져요! 추사 김정희의 과천 박물관과 제주도 유배지를 모두 다녀올 수 있는 기회가 닿은 것이 행운인 듯해요. 소정 기자의 앞선 추사 김정희 기사를 읽었던 독자라면 이번 기사를 더 흥미롭게 느낄 거예요. 그리고 첫 번째 기사보다 이번 기사가 분량과 내용 면에서 모두 훌륭해서 박수를 쳐주고 싶어요. 해설사 선생님과의 문답 형식으로 글을 쓴 것도 좋아요. 다만 한 가지 덧붙이자면, 유배지에 대한 기사인 만큼 김정희 선생님이 왜 유배를 가게 됐는지가 기사의 맨 앞부분에 나왔으면 더 좋았을 거예요.
다음 문장은 길어서 끊고 자연스럽게 고쳤어요. [제자 이상적이 김정희 선생님을 위해 도움이 되는 책을 연경에서 사서 전해준 것에 대한 보답으로 김정희 선생님이 세한도를 그려준 것이라는 것을 해설사 선생님께 더 들을 수 있었습니다.] → [해설사 선생님께서 새로운 사실을 알려 주셨습니다. 제자 이상적이 여러 책들을 연경에서 사서 김정희 선생님에게 전해주었는데, 이에 대한 보답으로 김정희 선생님께서 세한도를 그려서 주었다는 것입니다.]
“~입니다”는 대부분 ‘입니다’를 앞말과 붙여 써요. ‘이곳’도 이와 곳을 붙여서 써요. 이외에 수정한 부분도 밑줄 그어 표시했으니 확인해 보세요.
서울 봉은사와 해남 대둔사 일지암을 방문할 기회도 오기를 빌어요! 그때도 이번처럼 멋진 기사 부탁할게요. ^^
마지막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