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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가 우리나라 문화재에 저지른 끔찍한 만행들!!
안녕하세요, 김민성 기자입니다.
오늘은 과거 일본 제국이 우리나라에 저지른 끔찍한 만행들에 대하여 알아보도록 할텐데요. 물론 뉴스나 영화 등으로 잘 알려진 위안부 문제, 강제징용(군함도)이 아닌, 우리에게 덜 알려진 만행들에 대해 알아보도록 할 거예요.
일제가 우리나라의 민족성과 혼, 문화를 파괴하기 위해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을 훼손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나요?
지금부터 하나씩 자세히 알아보도록 해요.
1. 경복궁을 훼손하고 조선총독부를 건설한다.
조선 왕조의 법궁은 '경복궁' 이었어요. 경복궁은 조선 1대 왕 태조 이성계와 정도전에 의해 건설되어, 임진왜란에 불타서 소실되었지만 19세기에 고종 황제의 아버지인 흥선대원군이 재건했어요. 경복궁은 조선 왕조의 혼이 담겨있는, 우리의 중요한 문화유산이었답니다.
그런데 일제는 경복궁 건물들을 하나씩 철거하기 시작했어요. 1910년에 박람회 개최를 위한 공터 마련을 구실로 경복궁 안에 있는 300여 채의 전각을 모두 매각했죠. 1912년 근정전으로 통하는 문인 '흥례문' 을 파괴하고 1915년에 자선당과 비현각을 철거했어요. 1918년에는 창덕궁 대화재로 손실된 전각 복구를 빌미로 강녕전과 교태전을 해체했고요. 심지어 1927년에는 경복궁의 정문인 광화문까지 해체했답니다! 정말 너무하지 않나요? 남의 나라 궁전을 마음대로 철거하고 뜯어내서 일반인에게 팔아 넘기다니.
(사진 출처: 지식채널 e 캡쳐)
위 사진은 일제가 경복궁 건물 대부분을 해체하고 나서 남은 경복궁 건물들이에요. 터가 매우 넓은 것에 비해, 건물은 매우 적게 있죠? 하지만 일제의 만행은 여기서 끝나지 않아요.
일제는 철거하기 전 홍례문(홍례문은 현재에는 복원되어 있습니다.)이 있던 터에 조선총독부라는 건물을 세워요. 조선총독부는 일제가 우리나라를 다스리고 통치하는 데 쓰인 식민통치기구에요. 즉, 일제는 남의 나라 궁전을 다 뜯어버리고 그 자리에 식민지를 다스리는 데 쓰이는 건물을 지음으로서 우리나라의 문화 통치를 하려고 한 거였죠. 더욱 놀라운 사실은, 일제에게 해방된 1945년으로부터 약 50년이 지난 1996년에야 조선총독부 건물을 철거하고 1990년에서야 경복궁 복원을 시작했어요. 아직도 경복궁 복원공사는 계속되고 있어요. 복원공사는 2030년까지 계속될 것이고 그 때에는 약 76%를 되찾을 것이라고 하네요. 하지만 경복궁 복원사업으로 우리나라에서 약 1000억 원을 쓰고 있는데, 정작 경복궁을 철거했던 일제는 모른 척을 하고 있답니다.
경복궁 홈페이지: www.royalpalace.go.kr/
2. 창경궁을 동물원으로 만들어 버린다.
창경궁은 종로구 창경궁로에 있는 궁으로, 임진왜란 이후로 경복궁이 불타자 왕들이 살던 거처 중 하나에요. 나무가 많아서 공원같은 분위기가 나는 곳이지만,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서 돌아가신 슬픈 역사가 서려있는 곳이랍니다.
하지만 창경궁에는 그보다 더욱 슬픈 역사가 있어요. 여러분도 아시겠지만 창경궁은 일제에 의하여 1909년부터 1983년까지 동, 식물원으로 사용되면서 '창경원' 이라고 불렸거든요. 왜 일제는 창경궁을 동물원으로 만든 것일까요? 바로 우리 궁을 격하시키려고 한 일제의 술수였죠.
동물원을 만들면서 창경궁은 자연스럽게 훼손되었어요. 전각이 하나 둘 헐리고 그 자리에 동물 우리가 만들어졌죠. 게다가 일본의 국화인 벚꽃을 심기까지 했어요. 그리고 일반인에게 개방했죠. 왕과 신하만이 출입할 수 있었던, 조선 왕조의 거처였던 창경궁은 일제에 의해 동물원으로 탈바꿈하면서 일반인들이 출입할 수 있는 관광지가 되어버린 거였어요. 다행히도 1983년 창경원을 다시 창경궁으로 복원하고, 창경원에 살던 동물들은 서울동물원으로 옮겨지게 되었답니다.
(아래 사진: 아직도 창경궁 한 편에 남아있는 1909년에 건설된 대온실)
창경궁 홈페이지: cgg.cha.go.kr/
3. 경희궁을 파괴한다.
일제에게 가장 많은 피해를 본 궁은 어디일까요? 경복궁? 창경궁? 바로 경희궁이에요.
일제는 1910년 경성중학교를 짓는다는 구실로 창경궁을 파괴했어요. 전각은 모두 매각되고 철거되거나 다른 곳으로 옮겨졌어요. 경희궁의 정문인 흥화문은 일제가 안중근 의사에 의해 포살된 이토 히로부미를 기리기 위해 지은 사당인 박문사로 옮겨졌어요. 광복 후에 박문사가 폐사되자 흥화문은 유명 호텔인 S호텔의 정문으로 사용되었답니다! 나라의 궁전 정문을 한 호텔 정문으로 사용하다니, 너무하죠? 흥화문은 1988년에 원래 경희궁의 터로 다시 돌아왔고, 1차 복원사업을 통해 몇몇 전각들이 복원되었어요. 물론 아직 복원해야 할 전각이 산더미지만 말이예요.
4. 숭례문을 다른 이름으로 부르고, 돈의문을 불태운다.
제가 퀴즈를 내 볼태니, 한번 맞춰보세요. 한양의 4대문 중 남쪽 문으로, 국보 1호인 이 건물은 무엇일까요?
분명 답을 '남대문' 이라고 대답하신 분이 계실 텐데요. 남대문이 일제가 지은, 잘못된 말이라는 것을 알고 계시나요?
원래 남대문의 이름은 '숭례문' 이에요. 유교 사상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인의예지신(仁義禮知信)' 중에 예절 예(禮)에서 따온 이름이죠. 그런데 일제는 1934년 '남대문' 이라는 이름으로 문화재 지정을 해요. 숭례문이라는 예쁜 이름이 있는데도 문화통치를 위해 남대문이라고 낮춰 부른 것이죠. 창경궁을 창경원이라고 부른 것처럼요. 또한 일제는 서쪽 대문인 '돈의문'을 철거해요. 그래서 돈의문은 여전히 복원되지 못하고 있죠. 참으로 슬픈 일이죠?
5. 문화재를 파괴하고 그 자리에 도로를 세운다.
현재 창덕궁과 종묘는 사이에 넓은 도로를 두고 떨어져 있어요. 하지만 과거 창덕궁과 종묘, 창경궁은 모두 연결되어 있었답니다!(현재에도 창덕궁과 창경궁은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왜 지금은 떨어져 있냐고요? 이제는 안 봐도 일제가 한거라고요? 맞아요. 일제는 창덕궁과 종묘 사이에 넓은 도로를 놓아서 두 문화유산이 떨어져 있도록 했어요.
서울도성도 마찬가지에요. 서울도성을 돌아보다 보면 여기저기 도성이 끊겨있고 그 자리에 도로가 들어서 있어요. 터널을 뚫었으면 충분히 도성을 피해갈 수 있을 것 같은데, 일제는 기어이 도성을 끊고 그 사이에 도로를 놓았죠.
지금까지 일본 제국이 우리나라의 문화재에 저지른 만행들에 대하여 알아봤어요. 다시 이런 일이 없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바로 여러분이 일제가 우리나라의 문화재들을 훼손했고, 다신 이런 일이 없어야 한다고 생각해야 해요. 앞으로 일제가 우리나라 문화재를 많이 훼손했다는 것을 절대 잊지 말아주세요!
감사합니다.
-참고: 위키백과, 다음백과
글쓰기 평가어린이과학동아 기자2018.02.01
민성 기자, 오늘은 일본이 우리 문화재를 훼손한 것을 조사해 정리해 주었네요. 민성 기자의 글을 통해 몰랐던 사실을 많이 알게 되었어요. 이런 역사적인 사실을 잘 아는 것은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모르면 대비할 수가 없기 때문이에요. 민성 기자의 글을 통해 어과동 친구들도 꼭 알아야 할 사실들을 잘 알게 되는 좋은 기회가 될 것 같아요.
이번 글은 자료 조사를 정말 충실하게 잘 한 점이 우선 좋았고, 긴 글임에도 짜임새있게 소주제로 나눠 정리한 점도 좋았어요. 덕분에 글을 읽는 것이 지루하지 않았어요. 또 문법적인 실수도 거의 없었고, 문장력도 아주 좋은 편이에요. 민성 기자의 글 실력이 나날이 더 좋아지는 것 같네요. ^^
좋은 기사 아주 잘 봤어요. 앞으로도 좋은 글로 자주 만나길 기대할게요. ^^
(그리고, 출처를 밝히지 않은 사진은 아쉽지만, 삭제했어요. 앞으로는 꼭 사용할 수 있는 사진으로 올려 주길 바라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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