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과학동아&수학동아 기사
이준서의 역사강의!명량대첩에 대하여 알아보자.
여러분!안녕하십니까!저는 이준서 기자입니다. 전 오늘 여러분도 알고 계신 이순신 장군님의 명량대첩의 관하여 이야기를 해 보려고 합니다.
먼저 명량대첩에 관한 이야기를 하기에 앞서 그 당시 이순신 장군님의 상황을 알아보겠습니다. 그 당시 이순신 장군님은 선조의 명을 거부한 이유로 백의종군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순신 장군님 대신 원균을 삼도수군통제사로 임명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 원균은 선조의 명을 받들어 부산 앞 바다로 나센 가 싸웠지만 결국은 배를 모두 잃고 원균도 전사하였습니다. 하지만 다행히 전투 도중 배설 장군이 12척에 배를 가지고 빠져나왔고 또 전투 종료 후 배1척이 남았습니다. 이 칠천량해전이 대패로 끝나자 선조는 이순신을 다시 삼도수군통제사로 임명하였습니다.
자! 이제부터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하겠습니다. 이순신 장군님은 다시 삼도수군통제사가 되자마자 13척에 배 밖에 없는 조선 수군에 처지를 보고 이런 계책을 생각해내었습니다. 그 계책은 일본군이 보급을 위해 진도 쪽 물살이 세고 좁은 울돌목으로 올 때 조선 수군의 배들이 일자진을 펼쳐서 일본군을 차례로 격파하는 계책 이었습니다. 그리고 명량대첩의 날이 밝자 일본군은 예상대로 보급을 위해 울돌목으로 나왔습니다. 그리고 조선 수군의 배는 계책대로 움직였습니다 . 그리고 이순신 장군님이 탄 배에서 "진격하라!"라는 소리가 들리자 이상하게 이순신 장군의 배만 나왔습니다 . 그 이유는 다른 배의 병사들과 장군들이 겁을 먹고 나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이순신 장군님은 바로 일본군 배 몇 척을 격파시켰습니다. 그러자 병사들도 금세 용기를 되찾고 앞으로 나와 싸웠습니다 . 잠시 후 일본군이 후퇴하자 이순신도 더 이상은 버티기 어렵다는 걸 눈치 채고 후퇴하였습니다. 잠시 후 추격을 시작한 일본군은 날씨가 너무 추워 추격을 중지하고 완전히 후퇴하였습니다.
자! 이야기 어떠셨나요?저는 여러분 모두 재밌게 읽으셨다고 생각하고 재밌는 정보 하나 드릴게요. 일본 수군은 배에 포가 없는 대신 빨라요. 그 이유는 보급과 전투 중 빨리 다른 배에 올라타 자신들이 제일 강한 육상전을 벌이기 위해서 랍니다. 자! 여러분 그럼 안녕~.
글쓰기 평가어린이과학동아 기자2017.03.06
이준서 기자의 명량대첩에 관한 기사 잘 읽었어요. 이준서 기자의 글을 읽으면서 몇 년 전에 영화 <명량>을 봤던 게 생각이 났어요. 어려운 역사 용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구체적으로 당시의 상황을 이야기하듯 잘 풀어서 글로 썼어요.
아쉬운 점은 만약 이준서 기자가 이 글의 내용을 글이 아닌 말로 했다면 지루하지 않았겠지만, 글로 줄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써 내려가면 자칫 글이 지루한 느낌을 받을 수 있어요. 명량대첩이 일어난 사건을 시간 흐름에 따라 계속 쓰기보다는 이준서 기자가 쓴 기사를 통해 명량대첩의 어떠한 점을 이야기하고 싶은 건지를 선별하는 게 중요할 것 같아요. 사실 명량대첩이 무엇인지는 인터넷에서 검색만 해 보아도 자료는 쉽게 찾을 수 있기 때문이에요.
다음 기사를 쓸 때에는 이준서 기자가 글을 표현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먼저 생각해보고 기사를 써 보세요. 훨씬 더 좋은 기사를 쓸 수 있을 거예요.
밑줄로 표현한 부분은 간단한 띄어쓰기와 맞춤법을 수정했어요.
[하기] → [하기에], [윈균] → [원균], [배1척] → [배 한 척], [올때] → [올 때], [펼처서] → [펼쳐서], [눈치채고] → [눈치 채고], [전투중] → [전투 중]
지적이 필요해 보이네요~
버티기 힘들다고 판단한 게 아니라 더 이상 전진하면 불리할 것 같아 후퇴한 겁니다
그리고 일본군이 뒤쫓지 못한 이유는 추워서기도 하지만 후퇴를 멀리 했기 때문입니다.
백병전과 육상전은 다른 겁니다.
백병전-사람대 사람으로 싸우는 겁니다 전투죠
육상전-이건 그냥 육지에서 하는 전투에요